기후가 모든 걸 좌우하는 시대다. 기후 변화, 기후 위기, 기후 대응 등 담론이 즐비하다. 당장 산업, 일터, 생활에서 현실이 되었다. 기후 정책과 실행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면 국가경쟁력 추락은 물론 일상의 파괴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플래닛리터러시는 기후위기를 둘러싼 이해관계자인 기업, 정부, 시민 등이 맞닥뜨린 이슈를 이해하고 새로운 좌표를 연결하는 데 초점을 둔 매체다. 창간에 즈음해 한국의 기후 위기 담론을 담고자 언론 및 학계, 컨설팅 현장에 있는 이해관계자들을 모아 지난 5월 31일 에스코토스컨설팅 회의실에서 논의의 자리를 마련했다.
2시간여 진행된 창간 대담에는 △ 박기용 한겨레 기자 △ 신혜정 한국일보 기자 △ 정수린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류종기 한영회계법인 상무가 참여했다(무순). 질문과 답변은 시간 제약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이뤄졌다. 참석자들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드린다.
플래닛리터러시(이하 PL): 하루가 멀다 하고 기후 재난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토네이도, 폭우, 이상고온 등 지구촌이 몸살을 겪는 상황이다. 사과값, 채소값 급등도 농작물 가격도 기후 변화와 관련한 ‘기후 플레이션’으로 읽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신혜정(이하 신): 기후와 환경 분야에 관심을 갖고 본격 취재에 나선 계기는 2020년 여름 남부지방을 강타한 큰 홍수(주. 거대 장마전선이 6월 남부지방과 제주도를 시작으로 두 달 이상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 사태)였다. 더 이상 늦어선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일었다. 재난 보도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언론계서 기후 이슈는 정치 부동산 등 다른 주제에 늘 밀린다. 4월 총선에서 화제가 된 대파도 선거 이슈로만 소비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있다.
기후 보도가 '나'의 일상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소값 고공행진 등 실생활 관련 보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접근 같은 것이다. 2022년 언론재단이 기후/환경 저널리즘과 관련해 시민 2천 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시민들은 기후 변화가 왜 일어나고 얼마나 심각한지가 아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초점을 뒀다. 큰 힌트를 얻었다.
박기용(이하 박): 2019년부터 환경 분야 취재를 맡았다. 이 무렵 시민 인식이 확산된 사건이 있었다. 그레타 툰베리가 2018년 8월 기후 관련 법안 마련을 촉구하면서 스웨덴 의회 앞에서 ‘결석 시위’를 했고, 그해 말 우리나라에도 보도됐다. 아마 학교 안 가는 핑계도 가지가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을 거다. (웃음) 툰베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영향을 미쳤는지, 각계각층 시민과 단체가 모인 연합체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결성됐다.
매년 9월을 ‘집중 행동의 달’로 삼고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기후위기에 맞선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당시 사회 전반에 기후가 스며드는 일련의 흐름이 있었다고 본다. 2020년 54일에 걸친 역대 가장 긴 장마, 2022년 8월 8일 수도권에 내린 300mm 이상 폭우로 인한 ‘반지하 침수’ 사건 등은 체감적으로 컸다. 2020년 여름을 경험하며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다”라는 말까지 유행했다. 올해는 총선을 앞두고 기후선거, 기후유권자 등의 운동으로 이어졌다.
로컬 컨텍스트 연결지은 기후 커뮤니케이션 필요
PL: 봄 우박·폭설, 겨울 폭우 등 기후위기를 체감할 수 있는 기후 변화가 수시로 닥치고 있다. 토네이도 등 거대한 자연 재난을 맞닥뜨리는 미국서는 어떤 대응 흐름이 있는가?
정수린(이하 정): 미국의 기후 재난은 한 번 오면 강도가 매우 세지만 빈도가 떨어져서 회복력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강력한 재난은 미국보다 없지만, 빈도가 잦은 중저강도 스트레스가 퍼져 있다. 저강도로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쌓이면 회복력이 그만큼 떨어진다.
'북극곰 저널리즘’이라는 게 있다. 기후 변화를 말할 때 북극곰, 남극 해수면에 대한 언급은 효용감이 낮다. 북극곰, 남극 저널리즘은 결론이 없는 얘기이기도 하다. 나와 관련된 것이 아니니까. 반면 내 고향 해수면이 낮아졌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 이처럼 기후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일상과 맞닿을 수 있는 로컬 컨텍스트를 엮어서 효용감을 느끼고 액션을 하도록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은 트럼프로 대표되는 ‘페이크 뉴스’를 바탕으로 기후 변화가 정쟁의 도구로 점철된다. 반면 우리는 기후 자체를 놓고 정쟁으로 가진 않지만, 안타깝게도 기후 관련 에너지(정책)가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여서 에너지가 중요한데 정권에 따라 입장이 달려져서 문제다.
다만 미국 언론 보도를 보면 기후를 둘러싸고 이해관계자 사이에 싸우는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로컬 콘텍스트나 효용감 차원에서 생산하는 기사가 많다. 미국 대학들도 기후 관련 저널리즘이나 커뮤니케이션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게 약한 것 같다.
류종기(이하 류): 기업이 기후 대응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려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봐야 한다. 기업은 일반적으로 기후를 리스크로 인식하고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서 출발한다. 즉 기후 변화로 인해 비즈니스, 이해관계자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쏟는다.
다만 일반회사와 금융회사 간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금융감독 기관이 기후 리스크 관리지침을 내고 있어서 금융회사는 이를 따른다. 반면 다른 일반 기업은 그렇지 않아서 그 대응이 구체적이고 뚜렷한 경우는 많지 않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나 기후 변화가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 보고서 등에는 언급되더라도, 자세히 보면 그걸 전면적으로 하기 힘든 이유 등을 대고 있다. 아직은 먼 미래처럼 보인다.
기업에는 기후와 관련된 변수가 많다. ‘전환 리스크’를 감안한다면 기후 대응은 머뭇거리지 않게 하는 게 관건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부, 정책, 기업 모두 머뭇거리고 있다. 기업은 전환을 위한 자원 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등을 쉽게 외부에 보여주지 않는다. 점진적인 온도 변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소구하는 건 기업 행동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발생 확률은 낮아도 한 번 발생하면 회복이 불가능해서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효과적이다. 여러 변인을 펼쳐놓고 기업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얘기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은 아주 중요하다. 현장은 탄소중립을 향해 달궈지고 있지만, 정책은 퇴행하거나 속도가 느리면 갈 길이 더 멀어진다.
"명확한 인센티브 제도 없으면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PL: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플라스틱협약 정부 간 협상’ 제5차 회의 개최국이지만 플라스틱 감축 실천은 뒷전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 정책 대응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류: 기업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돈을 벌거나 세금 혜택이 있으면 철저하게 움직인다. 기후 변화 주무 부서가 환경부인데, 기업들을 위한 인센티브 같은 게 거의 없다. 전환 리스크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제조업의 경우 탄소중립을 하자면 공장이나 에너지 체계 등을 바꿔야 하는데, 투자 비용만 있고 세금 공제 등 메리트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또 현재 ESG공시 의무화는 유예된 상황인데, 그 시기가 닥쳐도 경제단체들을 통해 탄원서를 내고 또 유예받으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도 기후공시를 한다고 하니 탄원서만 5천여 건이 접수되고 끊임없이 기업 로비가 이뤄진다. 많은 기업이 앞에서는 기후 변화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ESG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뒤로는 로비 자금을 대면서 공시 유예나 폐기를 요청하는 그린워싱에 나서기도 한다.
내가 역자로 참여한 ≪밸런싱 그린≫의 저자 요시 셰피 교수는 '소비자 행동'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소비자들은 친환경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친환경 제품에 지갑을 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업은 환경 이슈에 투자하기 어렵다. 미국 보스턴에서 이런 실험을 한 적 있었다. 마트에서 같은 기능을 가진 친환경 제품과 일반 제품을 매대에 놓고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사는지 지켜봤더니, 10%만 친환경 제품을 샀다. 소비자도 돈을 써야 하는 것이다.
박: 22대 국회가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앞선 21대 국회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통과됐지만, 부문별 감축을 위한 실행력 있는 입법은 되지 않았다. 미국, 유럽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그린뉴딜 등 산업계 관련한 흐름이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단계에 가지 못했다.
22대 국회에 ‘기후 국회의원’을 표방한 의원들이 다음 단계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아울러 사회 전체에 기후 담론 흐름이 흘러가면서 일반 시민은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치권 등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관심이 커졌다. 현재 헌법재판소가 아시아에서 처음 진행되는 기후소송을 심리 중인데, 한겨레는 이를 청소년 관점에서 보도했다.
미래세대의 기후권 관점에서 보면 한국 기업의 준비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정책을 움직이는 다양한 영역 가운데 기업이 속한 경제 영역 움직임도 중요하다. 금융과 기업이 돈을 풀고 투자하면서 정책과 맞물려 돌아가야 하나,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현재는 부족하다. 당면한 국내외 기후공시도 그렇다. 현재 여건에서는 기업들은 어떤 상황이며, 이헤관계자와의 협력과 리스크 관리를 잘하고 있는 국내 사례를 발굴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관련한 전환 리스크도 있다. 정부(환경부)는 한국은 플라스틱 생산 대국이라 속도 조절이 필요하고 재활용을 우선 잘하고 보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다음 단계 준비는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국내 기업들은 도태당하고 만다. 플라스틱 오염원으로 국제사회에 공인될 거고, 탄소세 등 허들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제품 가격을 올리는 요인만 키우는 꼴이다. 석유화학산업도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전환 속도는 조절해도 신소재와 대체제 개발 등이 늦어지거나 비싸서 재생 원료 수급도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제대로 뚫어주는 역할을 서둘러야 한다. (신혜정 한국일보 기자)
LG의 체계적인 기후대응 눈여겨 볼만하다
류: 지속가능경영 국제 보고 가이드라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에는 생물다양성을 포함해 활동을 어떻게 공시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TCFD 등의 구체적 내용도 기업은 알고 있다. 지금은 자율 공시라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문제는 의무화가 됐을 때다. 중소기업만 해도 담당자가 없거나 담당자를 지정해도 회사 내 직원들 협조를 얻어야 하니 어려움이 있다.
기존 재무 공시는 체계가 있지만 기후공시 등은 해본 적이 없어서 맨땅에 헤딩해야 한다. 대기업(군)은 어느 정도 흉내는 내고 있지만, 이들이 낸 TCFD보고서를 보면 피상적이고 두루뭉술한 나열식으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수치에 대한 근거가 없다.
LG는 지속가능성 공시자료를 낼 때 가장 먼저 기후공시를 내세운다. 다른 기업과 달리 LG는 리스크부터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페이지 수도 만만치 않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활동하는 사례다. 현재 LG는 계열사별로 CRO(최고위험관리책임자)를 두고 전담팀도 구성했다. 그룹 내 전담 인력이 65명이다. 국내 기업으로는 보기 어려운 조직 체계라고 생각한다.
PL: 정책이든 기업이든 무엇을 선택하고 가져갈 것인지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저널리즘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선제적으로 나서 변화와 실천, 혁신을 유도하고 싶지만 실제적인 변화는 더디다. 한국 언론의 기후 관련 보도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 균형 잡힌 관점이다. 국내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이유 중 하나가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둘러싼 갈등과 전선이 명확히 그어져 진도가 나가지 못하는 부분이다. 언론이 진영 논리를 벗어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 언론 칼럼에서 우리나라 태양광이 효율이 낮은 근거로 미국 캘리포니아와 비교를 했더라. 비교 대상이 잘못됐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간 치열한 전투 상황에서 벌어지는 무리한 주장이다.
얼마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들에게 소형묘듈원자로(SMR) 설명을 들었는데 많은 궁금증이 해소됐다. 우리나라는 현재 석유화학, 철강 등 중추 산업부문에서 에너지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SMR을 잘 개발하면 해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탈원전을 둘러싼 정권 간 갈등 문제로 볼 게 아니라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균형 잡힌 논의가 가능한 보도를 해야 한다.
신: 원전이냐 재생이냐를 놓고 싸우면서 우리 사회가 중요한 첫 단추를 잃었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석탄화력발전소를 빠르게 줄이고 폐지하는 것보다 전환비용이나 노동자 일자리 전환 등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논의가 지난 국회에서는 빠졌다. 국회는 ‘원전 대 재생에너지’라는 대립각만 세웠고, 언론은 이런 구도가 그림이 되는 데다 조회수도 나오니 균형 보도는커녕 기존 편견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기후 저널리즘’은 여러모로 아쉽다. 현장 기자들은 기후 이슈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조금씩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게 미흡하다. 가령 ESG라는 단어도 산업 분야마다 접근이 다르다. 가령 헬스케어 분야는 환경 키워드가 생소하다. 기업들도 기후 변화가 매우 중요한 의제임에 동의하고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뭘 할지 막막한 부분도 존재한다. 언론에서도 이를 취재하는 산업부나 경제부 기자 등이 기후 통합적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으나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국내 기업들도 (언론 보도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좋다고 본다. 최근 일본 기업체 600여 개가 가입한 협의체인 JCI(일본 기후 이니셔티브)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들 기업은 일본 정부의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기업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많이 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언론에서도) 전환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럽 기업의 기후 외교 '소프트 파워' 키우는 접근
박: 언론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지만, 언론과 취재원을 둘러싼 환경 등도 영향이 있다. 기후 관련해 만나는 취재원 뒤에 유독 유럽의 기업, 기관들이 많다. 유럽기후재단(European Climate Foundation·ECF)이 최근 SNU팩트체크센터를 지원하는 등 한국에서도 체계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일단 좋은 취지에서 이뤄지는 활동으로 평가하고 싶다.
최근 산업자원부를 통해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해상풍력특별법에 대해 들었다. 현재 덴마크 등 유럽 회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작업하고 있다. 해상풍력을 둘러싼 복잡한 이슈가 있는데 산자부는 해외자본에 대해 부정적 관점이 있었다. 이런 것도 보도에 일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정: 이런 흐름을 공공커뮤니케이션, 기후 외교라고도 부른다. 경제, 군사, 정치 등을 통한 ‘하드 파워’는 미국, 유럽, 중국 등 이미 순위가 정해져 있다. 반면 매력 등으로 소구하는 ‘소프트 파워’는 다양한 변이를 줘서 국력을 올릴 수 있다. 소프트 파워는 인권 등과 같은 초국가적 이슈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자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지금 유럽이 기후/환경을 소프트 파워 삼아 기후 외교를 하면서 미디어 주도권을 쥐려고 하고 있다. 수면 아래로는 유럽의 기후/환경 기술을 퍼뜨리겠다는 의지도 있다.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헛발질을 많이 한 탓에 기후 외교에서 초국가적 리더십이 타격을 받았다.
PL: 미디어 쪽도 비슷한 양상이다. 해외는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와 같은 협력체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한국 언론은 기후 주목도가 낮다. 기후 전문 기자를 키우고 기후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북돋을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 기후 저널리즘과 커뮤니케이션이 기후 민감도를 높이고 행동 촉진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정: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를 보면 기후가 중심에 있고 정치, 경제, 문화 등이 따른다. 즉 ‘기후 스탠스’를 바탕으로 통합적인 보도를 한다. 지금 한국 언론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전사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기후를 핵심 주제로 경제·금융, 정책, 부동산 등을 아울러 교육하는 시도나 팀으로 묶는 방식이다.
해외서는 에너지 관련 정쟁 등을 봤을 때 특정 에너지에 대한 낙인 효과가 강하다. 에너지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나 낙인을 찍어 회피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현재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가동에 엄청난 에너지(전력)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에너지를 낙인찍을 게 아니라 국익과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비판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살펴볼 부분도 있다. 현 에너지 정책은 서울 등 대도시 전력 공급을 위해 다른 지역에 발전소와 송전탑을 배치한다. 위험과 피해를 외부화한 에너지 불평등 문제로 ‘지역민들은 있는가’라는 비판이 나온다.
2003년 KTX 터널 공사 반대 시위를 하고 천성산 도룡뇽을 원고로 소송에 나섰던 지율스님을 기억할 것이다. 현재 에너지 불평등과 비슷한 맥락으로 경제성을 고려하면 틀린 선택은 아니나 분명 지역 생태계가 파괴되는 측면이 있었다.
에너지도 지역사회의 환경 피해와 지역민 희생을 담보한다. 재생에너지든 원자력이든 만들 때 산을 깎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잔인한 과정이다. 청정 에너지라는 신화 이면에 지역 환경과 지역민의 피눈물이 있다. 국가를 하나의 커뮤니티로 보면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이런 이슈에 혜안을 찾는 그림이 나와야 한다.
'원전 대 재생에너지' 구도 넘어 지속가능성 제시해야
PL: ‘플래닛 리터러시’ 창간을 앞두고 있다. 또 다른 매체가 아니라 의미있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조언을 부탁한다.
신: 취재할 때마다 늘 기후, 에너지 리터러시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웃음) 우리나라 시민들이 기후에 대한 인식은 높은데, 도덕적 의무이자 언어로서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 사실 많은 사람이 내가 쓰는 전기가 어디서 오는 지도 모른다. 기사를 쓸 때도 구체적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게 힘들더라. 기후/환경과 관련해서 흩어진 점들을 잘 설명하고 연결해 주길 바란다.
박: 우리는 젠더, 불평등, 기후를 주력 분야로 정해놓고 기후변화팀을 4년 정도 운영하고 있다. 앞서 말한 르몽드 전략을 알게 모르게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길게 맡고 있는 취재 영역인데, 사명감도 생기고 성취감과 효능감도 느끼고 있다. 직업인으로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매체와 기자 모두에게 사회적 의무도 부여된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나 원전 대 재생에너지 갈등 등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매체가 되면 좋겠다.
정: 시민들의 기후 인식이 도덕적 접근에 가까운 상황에서 ‘탄소중립세를 만들면 낼 수 있어?’라고 물으면 기존과 다른 답변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기후가 일상에 당면하고 밀착한 문제임을 깨닫고 기꺼이 탄소중립세를 내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가 북극곰 저널리즘을 넘어 탄소중립세를 내겠다고 탈바꿈하게끔 일조한다면 충분히 공헌했다고 할 수 있을 거다.
류: 기후문제 해법은 기술에 있다. 기후테크나 탄소중립 기술은 개발 기간도 오래 걸리고 상용화도 지난하다.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 리더는 탄소중립 기술 개발에 자원과 역량을 집중하는 리더다. 플래닛리터러시도 기술을 충분히 다루면서 기업들이 제대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