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 해법은 ‘직접 PPA’...복잡한 과제 풀어야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정책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용 산업단지 조성, 제도 개선 등으로 산업계의 탈탄소 전환을 적극 유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새 정부는 지난 6월 4일 출범 직후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실현을 위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전용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이 재생에너지 전력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에너지믹스 정책에서도 유연한 입장을 내놨다. 재생에너지와 함께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도입 의사를 밝힌 상태다.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고속도로’라는 이름의 송전 인프라를 서해안과 충청권에 구축해 수도권과 영남 지역으로 재생에너지를 송전할 계획이다.

직접 전력거래사업(PPA). 이미지 출처: 현대건설 홈페이지 캡처
현대건설

이러한 정책 전환은 인공지능 산업의 전력 수요 급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9년까지 AI 데이터센터에서 요구하는 전력 수요는 49GW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현재 국내 최대전력 수요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규모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약 6배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현재 관련 기업들이 주목하는 것이 ‘직접 전력구매계약(Direct PPA)’ 제도다. 이는 전력 생산자와 소비자가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계약을 통해 전력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해외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구글은 SMR 개발업체와 500MW 규모의 직접 PPA를 체결했으며, 메타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원자력 발전소와 20년 계약을 맺고 안정적인 전력 확보에 나선 바 있다.

국내에서도 2022년부터 시행 중인 ‘재생에너지 직접 PPA 제도’는 300kW 이상의 수요자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복수의 발전소로부터 전력을 분산 공급받을 수 있어 리스크 관리에도 유리하다는 평가다. 전기를 저장 후 공급할 수 있는 전기저장장치(ESS) 연계 방식도 가능해 간헐성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따라,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이하 분산특구)에서는 직접 전력거래가 한층 유연해졌다. 분산특구 내에서는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분산에너지사업자가 직접 소비자에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으며, 송배전 설비를 자체 설치해 계통 포화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과 계약 구조의 복잡성을 풀지 않으면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재생에너지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과제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한 세계적 흐름이자, 새 정부의 핵심 에너지 정책 과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전환이 쉽지만은 않다. 특히 대규모 전력 사용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기반의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추진하려 할 때, ‘발전의 불안정성(간헐성)’과 ‘계약의 복잡성’이라는 두 가지 벽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 "햇빛이 없으면 멈춘다"…자연에 의존하는 발전의 한계

재생에너지는 본질적으로 자연조건에 따라 좌우된다. 태양광은 일조량, 풍력은 풍속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변한다. 예를 들어 흐린 날이나 무풍일에는 전력 생산이 사실상 중단되기도 한다. 이처럼 발전량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 첫 번째 문제다.

공급 시점과 수요 시점이 맞지 않는 점도 문제다. 여름철 밤처럼 전력 수요는 높은데 발전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는 에너지 저장장치(ESS)나 백업 발전원 없이는 전력 수급 불균형이 생길 수 있음을 뜻한다.

또 특정 시간대에 발전량이 급증하거나 급감하면 전력망 안정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공급이 불규칙해지면 송배전 계통의 주파수와 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대규모 정전 위험성까지 커질 수 있다. 이는 국가 전체 전력 시스템을 고려할 때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다.

법무법인 율촌은 보고서에서 "공급량이 전기사용자의 시간대별 전기사용량을 초과할 수 없다는 제한은 있으나, 데이터센터의 피크 시간대 전력 공급 등의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 계약 당사자부터 리스크까지…PPA 구조 자체가 ‘복잡한 퍼즐’

재생에너지 직접 PPA는 한국전력에 일괄 요금을 지불하는 기존 방식과는 전혀 다른 구조다. 발전사업자와 수요자(예: 데이터센터), 송배전사업자는 물론, 금융기관이나 계약 대행사 같은 제3자까지 계약에 참여하는 다자간 구조를 띤다.

특히 복수의 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경우, 발전소별로 계약을 따로 맺거나 하나의 계약으로 묶는 집합 설계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법률 검토, 세금, 인증, 송전 계약 등 실무 절차가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계약 방식도 다양하다. 고정가격(Fixed price), 시장지수 연동(Index-based), 혼합형(Hybrid) 등 여러 요금 모델이 존재하고, 각 방식마다 가격 변동성, 환율 리스크, 계약 해지 조항 등 위험 요인이 다르게 작동한다. 전력시장 가격(Pool Price)과 일정 부분 연계될 경우, 시장 급등 시 예측 불가한 추가 비용 부담도 발생할 수 있다.

법적·행정적 부담도 작지 않다. 발전사업 허가, 계통접속 신청, 전력계통 연계 승인 등 전기사업법과 재생에너지 관련 고시를 모두 충족해야 하며, 일부 제도는 여전히 변화 과정에 있어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또한 대부분의 PPA 계약은 10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요구한다. 이는 계약 기간 중 기술 변화(SMR, 수소 등), 정책 변경, 수요 변동 등에 따라 계약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정부가 원자력이나 수소로 전력 정책 방향을 전환하거나, 시장가격 구조가 바뀌면 기존 계약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율촌은 "분산특구 내에서는 직접거래에 참여하는 전기사업자가 직접 연계 전기공급 설비를 설치하는 경우 해당 송배전 설비를 이용하여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어, 계통 포화로 인한 전력 공급 제약을 일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법무법인 율촌은 최근 공개한 '새 정부 에너지 정책과 AI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관련 규제 동향과 쟁점' 보고서에서 “AI 데이터센터와 같은 전력집약형 산업에 있어 전력은 이제 단순한 운영비용이 아닌 생존 전략”이라며 “직접전력거래 제도를 활용하기 위한 법률적 리스크 관리 및 규제 대응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을 대통령실 기후환경에너지비서관으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