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진영 논리...산업은 속탄다
주요 정당이 기후 정책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이른바 ‘기후 인재’를 영입한 22대 국회. 박지혜 더불어민주당(경기 의정부갑), 김소희 국민의힘(비례), 서왕진 조국혁신당(비례) 의원 등이 ‘기후 위기’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의원 배지를 달았다.
66년 만에 가장 더운 6월을 기록한 국회는 기후 의제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일단 첫 단추는 꿰는 모양새다. 원내 1당인 민주당 의원 14명(이소영·박지혜·한정애·김정호·김성환·위성곤·민형배·김영배·김원이·허영·염태영·박정현·임미애·차지호·백승아)은 ‘기후행동의원모임 비상’을 결성했다.
이들은 기후정책 입법과제를 함께 해결하고 22대 국회를 ‘기후 국회’로 끌고 가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구체적으로 △효율적 탄소 예산 산정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과 관련 정책 수립 △석탄·가스발전, 내연기관 차 등 화석연료 감축 계획 및 로드맵 등을 제시했다.
지난 21대 국회는 ‘기후 정치’ 요구에 무기력했다. ‘기후위기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해상풍력특별법’ 등 주요 기후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무기력한 국회가 시간을 허비하자 4월 총선을 앞두고 ‘기후유권자 운동’ 등이 기후 정치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키웠다. 이번 22대 국회서 ‘에너지 선악 정쟁’을 극복하고 기후 정치를 향한 초당적 협력으로 기후 입법에 속도와 내실이 붙을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플래닛리터러시는 22대 국회 개원 직후 각 원내 정당에서 발의한 기후 관련 법안을 정리했다.
실제 권한 가진 기후특위, 첫 출발은 좋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기후특위 상설화’다. 기후특위는 기존 국회 상임위에서 다루기 어렵고 여러 부처가 연계된 기후정책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을 목표로 만든 위원회다. 21대 국회는 비상설 특위로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이 없는 등 한계가 뚜렷했다. 22대 국회가 개원하자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기후특위 상설화를 위한 결의안을 각각 발의했다.
서 의원이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한 ‘기후위기 비상대응을 위한 국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 구성 촉구 결의안’(국회 기후특위 결의안)에는 12명의 의원이 함께했다. 이 법안은 △입법권 및 예산심의권 포함 △위원 수는 위원장 포함 20인 이내, 원내 모든 정당 참여와 협력을 원칙으로 비교섭단체 소속 최소 4인 포함 △활동 기한은 2028년 5월 29일까지 22대 국회 임기 내내 상설 운영 등을 담고 있다.
이소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결의안도 기후특위에 입법권과 예산심사권을 부여해 기후위기 관련 법률과 예산을 유기적으로 심의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또 기후특위가 탄소중립기본법, 신재생에너지법, 배출권거래법 등 기후·에너지 관련 법률안을 심사·처리하고, 기후대응기금 및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 등의 예산안과 결산을 예비 심사할 권한도 부여한다.
앞선 국회 기후특위를 거울삼아 한계점을 보완하면서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입법권, 예산심의권 등의 권한을 담았다. ‘기후 국회’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안은 비상 소속 의원을 비롯해 22대 국회 개원 전 기후특위 상설화를 촉구했던 김용태(국민의힘)·천하람(개혁신당)·김종민(새로운미래)·용혜인(기본소득당)·한창민(사회민주당), 박지원(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함께했다.
탄소중립산업법, 세액공제 국회 문턱 넘을까?
박지혜 의원은 ‘탄소중립산업 육성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이하 탄소중립산업법)’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내 탄소중립산업과 탄소중립 산업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효율적인 지원 체계 마련을 뼈대로 한다. 이 법안에는 총 55명 의원이 공동 발의로 참여했고,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됐다.
‘한국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명명된 이 법안은 △국내 탄소중립산업 발전을 위한 효율적인 지원체계 마련 △탄소중립산업 기반 조성 및 재원 조달 계획 수립 △탄소중립산업 특화단지 지정 및 지원 △국가탄소중립기술개발사업 추진 및 인력양성 △탄소중립산업 관련 규제 완화 및 조세 감면 등을 담고 있다.
박 의원은 또 재생에너지를 세액공제 대상에 넣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들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 탄소중립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신성장 산업 발전 기회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7월 중에 탄소중립산업 육성 필요성과 과제를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
박 의원은 “재생에너지 등 탄소중립산업은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수단이자 국내 미래 산업 경쟁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필수 요소”라며 “탄소중립산업법을 시작으로 기후경제로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한 입법적·정책적 조치를 확대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계통확보, 인허가 처리 담은 해상풍력법 순풍 받나?
김소희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좌초한 해상풍력 관련 법안을 1호 법안(해상풍력 계획입지 및 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안)으로 발의했다. 이 법안은 개별 사업자가 사업 전 과정을 이끄는 현행 방식이 아닌 정부 주도의 계획 입지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해상 풍력 단지를 안정적으로 조성해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은 또 국무총리 소속으로 해상풍력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정부가 풍황(風況·특정 지역에서 바람의 현황)이 우수한 지역을 발전 지구로 지정해 사업자에게 관련 인허가를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김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 사업허가권만 남발한 결과 해상풍력 사업자들은 갖은 민원과 계통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었고, 사업추진도 사실상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법안을 시작으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질서 있는 에너지 전환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관련 업계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과 다르게 해상 풍력발전 단지(OWF) 개발 촉진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계통 및 건설 수용성, 경제성 등 해상풍력 전력계통 이슈도 실타래가 풀릴 수 있는 출발선으로 보고 원만한 법안 통과를 바라고 있다.
방폐물, 전력망 등 에너지 법안 곳곳 암초
이렇게 골든타임을 놓친 21대 국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다만 에너지를 놓고 진영 논리에 가둬 정쟁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여전하다.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탄소중립 산업 육성 등에는 여야 없이 인식을 공유하지만, 탈석탄 속도와 원자력을 둘러싼 입장 등에서 타협과 조화가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특히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해상풍력특별법’ 등 에너지 현안의 시급한 처리는 안갯속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처리할 수 있는 방폐장 구축에 대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은 사용후핵연료 저장 용량을 놓고 여야 간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서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도 더딘 상황이다. 재생에너지, 데이터센터 등에 대응하기 위한 송전망 확충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주민 수용성 문제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다. 풍력발전 촉진을 위한 해상풍력특별법도 여야 간 이견이 커 업계는 성장 동력을 잃을까 우려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뉴노멀은 없다.” 매년 새롭고 거대해지고 있는 비정상이 너무 빨리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기후 정치, 22대 국회는 싸울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