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선 ‘국제플라스틱 협약’ 쟁점
갈림길 선 ‘국제플라스틱 협약’ 쟁점
회원국들은 플라스틱 오염 문제가 심각하고 전면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를 놓고 크게 엇갈린다. 산유국, 플라스틱 생산국, 소비국, 피해국 등 자국 입장에 따라 규제 수위 결의는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산유국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3차 회의 때부터 진전이 멈춘 채 더디게 전개되고 있다. 규제 수준, 협약 이행 재원 조달 등 이슈가 산적한 셈이다.
Governance&Policy
김이준수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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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1월 부산은 ‘플라스틱 도시’로 세계에 이름을 올린다. 플라스틱으로 덮인다는 뜻은 아니다. ‘해양 플라스틱 문제를 포함한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이하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정부 간 협상 제5차 회의의 주무대가 된다. 부산에서 플라스틱 전체 수명주기를 포괄하는 협약이 성사되면 지구는 바야흐로 ‘탈 플라스틱 사회’를 맞는다.

1960년대 이후 ‘일회성’의 시대가 열리면서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한 것은 플라스틱이었다. 오늘날 플라스틱 없는 생활은 불가능하게 됐다. 그리고 플라스틱은 지구와 생태계를 위협하는 가장 거대한 존재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은 2000년 2억 3400만 톤에서 2019년 4억 6천만 톤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이 중에서 76%(3억 5천만 톤)가 쓰레기로 버려졌고 재활용은 9%에 불과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2060년 플라스틱 쓰레기는 10억 140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플라스틱 소비와 쓰레기 양산에 있어서 선진국이다. 2020년 페트병 사용은 56억 개에 달했고, 1인당 연간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량은 44kg으로 호주와 미국에 이은 3위에 올라섰다. 쓰레기 배출량도 팬데믹을 거치며 늘어났다. 2022년 기준(환경부) 1인당 플라스틱 쓰레기는 102kg(500ml 용량 생수병 1개로 환산하면 8500개)에 이르렀다. 한국환경공단은 2022년 서울시민 한 명이 1년에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80kg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해변가로 밀려온 플라스틱 오염물. AI로 제작한 이미지.

기후위기와 플라스틱은 한몸...지구의 어젠다

플라스틱을 둘러싼 위기감은 곳곳에서 등장한다. 지난해 ‘세계 환경의 날(World Environment Day, 6월 5일)’과 올해 ‘지구의 날’(Earth Day, 4월 22일)의 주제는 각각 ‘플라스틱 오염 퇴치(Beat Plastic Pollution)’와 ‘Planet(지구) vs Plastics(플라스틱)’일 정도로 지구촌에 퍼진 화두는 단연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1t당 평균 온실가스 약 5t을 배출하며, 플라스틱 생산단계에서 매년 약 10억톤, 가공단계에서 약 5억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플라스틱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의 3.4%를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첫 국제협약 협상은 ‘기후위기’ 담론으로 이어진다. 석유와 가스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화석연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만들 때나 버릴 때, 수명주기 전반에 걸쳐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플라스틱 협약은 2015년 파리 UN 기후변화 회의에서 채택돼 2016년 발효된 파리협약을 잇는다. 파리협약은 195개 당사국 모두에게 구속력 있는 첫 기후 합의였고, 플라스틱 협약은 그 이후 가장 큰 국제적 기후 합의를 만들고자 지난 4월 4차 회의를 마쳤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 체결을 위한 5차 회의가 ‘부산행’ 티켓을 끊었다.

이 플라스틱 협약의 시작은 2022년 3월이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제5차 UN환경총회(UNEA-5)가 열렸다. 심각한 플라스틱 오염 상황을 공유한 175개 회원국은 플라스틱 수명주기를 포괄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2024년까지 체결하기로 결의했다. 앞서 플라스틱 오염은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에 집중했으나, 이때부터 포괄적인 플라스틱 문제를 다루기로 합의했고 ‘정부 간 협상위원회’(Intergovernmental Negotiation committee·INC)가 만들어졌다.

정부 간 협상 의지에도 3차 회의 때부터 난항

같은 해 11월 죠티 마투르 필립(Jyoti Mathur-Filipp) INC 사무총장은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국제적으로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2024년까지 매우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열린 1차 회의(INC-1)는 협약 초안 작성을 위한 작업이 진행됐으며 이듬해 5월 프랑스 파리의 2차 회의에서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회의 일정 지연 등으로 넉 달이 지난 9월에 INC 사무국은 31쪽짜리 초안을 내놨다.

이를 토대로 3차 회의가 같은 해 1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진행됐다. 초안과 세부 내용을 놓고 치열한 논의와 눈치싸움이 전개되면서 협약안은 69쪽으로 늘어났다. 이어 지난 4월 캐나다 오타와 4차 회의에서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 조항을 둘러싼 협상이 처음 단상에 올랐다.

르완다와 페루가 2040년까지 플라스틱 신규 원료(1차 플라스틱 폴리머) 사용량을 2025년 대비 40% 줄이자고 제안했다. 플라스틱 생산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취지가 담겼다. 반면 일부 그룹은 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불분명하다며 플라스틱을 줄이기보다 환경 유출만 막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회원국들은 플라스틱 오염 문제가 심각하고 전면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를 놓고 크게 엇갈린다. 산유국, 플라스틱 생산국, 소비국, 피해국 등 자국 입장에 따라 규제 수위 결의는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산유국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3차 회의 때부터 진전이 멈춘 채 더디게 전개되고 있다.

생산 감축vs폐기물 해결...플라스틱 권력 따라 셈법 제각각

오는 11월 부산 5차 회의는 최종 대회전이란 의미를 갖는 만큼 다양한 쟁점이 폭발하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수준과 내용으로 협약이 맺어질지 단정 짓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일단 플라스틱 산업 규모가 큰 국가와 산유국 등은 규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반면 플라스틱 오염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국가들 중심으로는 강력한 협약 체결을 주장하고 있다.

단순한 분류로 나누기도 어려운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협의체(이니셔티브) 중심으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우호국 연합(HAC)’은 모든 주기에 걸친 플라스틱 감축으로 2040년까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내세운다. 노르웨이와 르완다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고, 4차 회의까지 총 65개국이 가입돼 있다. 한국도 이곳에 가입한 상태다. 미국은 가입했다가 2차 회의를 기점으로 탈퇴했다.

HAC에 대응하는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협약(GCPS)’은 사우디 주도로 3차 회의 때 출범했다. 러시아, 중국, 쿠바, 이란, 바레인 등 6개국이 참여한다. 인도, 브라질은 비공식적으로 GCPS를 지지한다. 생산 감축보다 플라스틱 폐기물 해결에 초점을 두고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규제 내용 삭제 및 아울러 법적 구속력이 약한 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4차 회의까지 주요 쟁점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 vs. 재활용 우선 △규제 대상 플라스틱과 규제 수준 △폐기물 관리 △협약 이행 평가와 구속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 조달 등이다. 우선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두고 EU, 영국, 캐나다, 르완다 등 아프리카 국가 상당수는 석유에서 뽑아내는 1차 플라스틱 감축목표를 정하고 규제 대상 플라스틱에 대한 생산·판매·유통·수출입 금지 등 강력한 제한 수위를 두자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등 플라스틱 주요 생산·소비국은 감축보다 재활용 우선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플라스틱 생산량이 많은 국가들은 대부분 감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선지 그래픽 디자이너.

‘플라스틱 강국’ 한국의 딜레마...재활용 선호?

협약 성격과 목표 연도 등을 놓고도 입장은 맞서고 있다. EU와 아프리카 등은 모든 국가에 동등하게 적용되는 국제 규제를 원하고 있다. 반면 미국, 중국 등 플라스틱 주요 생산·소비국은 국가별 상황에 맞춘 자발적 목표 수립을 지지한다. 또 국제협약의 목표 시기 명시를 놓고도 산유국들이 반발하고 있다. HAC 주축으로 대부분은 2040년을 목표 연도로 삼고 있다.

재원 조달 방안도 의견이 엇갈린다. 각국이 플라스틱 오염 부담금을 내 별도 기금을 설립하자는 개발도상국 입장과 지구환경기금(GEF)이나 세계은행(WB) 같은 기존 기구를 활용하자는 선진국이 대립하고 있다. 기술 이전 논의에서도 개도국은 청정기술 이전을 강조하고 있으나, 선진국은 지식재산권 존중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5차 회의에서 협상이 잘 마무리되면 협약은 2025년 각국 정부의 정권을 위임받은 외교관들의 회의인 전권외교회의를 통해 최종 타결된다. 파리기후협정처럼 개최지 이름을 딴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탄생한다. 전권외교회의 개최지로는 에콰도르, 페루-르완다(공동개최), 세네갈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현재 신규 플라스틱 감축보다는 재활용 등에 우선 집중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재 산업구조 등과 연관된다. 한국은 중국, 미국, 독일, 인도에 이어 플라스틱 생산 5위로 전 세계 생산량의 4.1%를 차지한다. 대기업이 플라스틱 원료, 중소기업이 플라스틱 가공품을 생산하는 구조를 반영한다. 2022년 기준 플라스틱 관련 제조업체는 2만여 개로 이 중 99%가 중소기업이며 플라스틱 산업 인력은 약 19만 명으로 추산된다. 플라스틱 소비 규모도 전 세계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입장 유사국과 연대해야...중소기업은 '아우성'

때문에 한국은 5차 회의 개최국이자 HAC 가입국이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다소 어정쩡한 상태다. 그동안 역할과 노력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HAC에 가입해 진행됐던 일회용품, 플라스틱 빨대 규제 등 정책들을 폐지하거나 유예하는 조치는 현 정부에서 나왔다. 자영업자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플라스틱 정책 퇴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에는 관련 산업서 아우성이다. 플라스틱 정책 흐름에 맞춰 대비하던 중소기업들은 고사 직전에 몰려있다. 특히 석유화학 강국으로서 엄청난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 규제에 관한 찬반 의견은 아예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중한 기조라는 시각도 있지만 그만큼 ‘답’이 없는 한국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최재연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4월 열린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전망과 과제 포럼’에서 “협상장에서 한국 입장을 경청하는 국가가 많고, 국제사회가 우리나라 입장에 주목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입장 유사국과 연대를 강화해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고 사회경제적 여파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조업 기반의 한국이 처한 상황은 만만치 않다. 플라스틱 감축과 오염 종식에 앞장서야 하는 입장과 아울러 경제구조와 산업계를 아울러야 한다. 관련 산업군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직업 안정성, 재교육 등 ‘정의로운 전환’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은 2025년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 행사 개최국이다. 지난 1997년 제28회 행사를 개최한 데 이어 두 번째다. 환경부는 올 11월 플라스틱 협약 5차 회의에 이어 이듬해 환경의 날 국제 행사까지 주최한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 이어 기후·환경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지 중요한 분기점이 다가오는 셈이다.

오는 9월까지 서울 충무아트홀서 열리는 <CCPP 기후환경 사진 프로젝트-컨페션 투 디 어스(Confession to the Earth)>에 참여하는 사진 작가 맨디 바커는 “한국의 숙소는 냉장고마다 작은 생수병이 있었다. 플라스틱 물병부터 사용하지 않는다든지, 적어도 용량이 큰 제품을 구매하든지 흐름이 필요하다”며 “한국 정부가 플라스틱 제조사를 대상으로 생산량을 줄이는 노력을 적극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준수

김이준수 입니다. 기후시민(climate citizen)과 그린칼라(green collar)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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