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기후 정책 로비를 해야 하는 이유
기업이 기후 정책 로비를 해야 하는 이유
MIT 보고서는 “경쟁 우위는 지속가능성 성과에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옹호 활동이 성공하려면 △내부 역량 구축 △외부 파트너와 관계 구축이 필수라고 제언했다. 예를 들면 기업 내부에서 지속가능성을 놓고 대관 업무(Public Affair), 홍보, 전략 및 재무 담당 간 협력을 잘 꿰어야 한다.
Company&Action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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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면한 사회적·환경적 도전은 효과적인 공공정책 없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 비즈니스 역할이 필수적이다.”

기후는 결국 정책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 국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전 세계에 적용된다.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협약(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 협약)과 이를 둘러싼 전 지구적 대응이 그렇다. 기후는 지구 위 모든 생명, 시민, 기업 등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의제인 것이다.

최근 국제사회가 총의를 모으고자 역점을 두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플라스틱이다. 임계치에 도달한 플라스틱 오염을 풀고자 각국 정부도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해양 플라스틱 문제를 포함한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이하 플라스틱 협약)은 국제적 정책 합의의 정점이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치열한 기업 로비의 장

지난 4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렸던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정부 간 협상 제4차 회의(INC-4)에는 196명의 로비스트가 참석했다. 지난해 11월 3차 회의 때 참석한 143명보다 37% 늘었다. 로비스트 규모는 유엔환경계획(UNEP)에 등록된 참석자 명단을 분석한 결과로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정책을 둘러싼 각계의 로비가 활발한 이유는 명확하다. 협약 조항 하나하나가 정책은 물론 업계, 기업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5차 회의(INC-5)는 로비스트를 앞세운 눈치 싸움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이란 예상이 일찌감치 나온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경영대학원의 경영저널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SMR) 봄호는 “기업이 기후정책을 위한 로비를 해야 하는 이유(Why Companies Need to Lobby for Climate Policy)” 보고서를 실었다.

이 보고서를 쓴 볼란스(Volans·지속가능성과 혁신에 중점을 둔 싱크탱크) 리처드 로버츠 수석연구원은 기업의 지속가능성 진전을 위한 ‘기후 로비’를 강조했다. 기존에 로빙(lobbying·입법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위)은 정책이나 문제 해결에 장애요인으로 인식되나, 보고서는 되레 로비가 가진 잠재력과 필요성에 초점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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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는 여전히 '로비'에 대해 부정적이다. 기업이 펼치는 로비 활동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 지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공공 외교(public diplomacy)의 일종이다. 기업과 정책,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이해 승인 등의 중재와 합의를 일컫는 'public affair'라는 단어가 적합하다. 한국은 '로비'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기업 이익과 공익 양손 쥐려 기후 정책 지지

왜 그럴까? 우선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기후정책 로비 활동을 펼칠 때 정책 전환에 따르는 혁신적 잠재력이 있다고 봤다. 보고서에 인용된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 Institute, WRI) 조사에 따르면, 기후정책과 관련한 비즈니스 리더십을 막는 7가지 장벽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장벽을 ‘경쟁 우선순위’로 지목했다.

기업 간 기후변화를 둘러싼 대응에는 온도 차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대응하느냐가 미래 경쟁력을 가늠한다는 것이다. 세계자원연구소(WRI)는 “기후 변화는 주요 오염 배출자, 집약적 에너지 사용자, 청정에너지 생산자 등이 아닌 대부분의 기업에서 최우선 우선순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현재 지속가능성에 진지하게 투자하는 기업의 범주는 뚜렷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솔루션 제공 업체, 재생에너지나 청정기술 업체 등 직접적이고 명백한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들이다. 가령, 세계 최대 풍력 터빈 제조업체인 베스타스(VESTAS)와 해상풍력 발전 업체인 외르스테드(Ørsted)는 에너지 전환을 빠르게 할 정책 입법을 위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보고서는 “(이들 기업은) 새로운 풍력 발전단지 승인을 앞당기고자 정부에 로비하고 있다”며 “이는 자신의 이익과 더 넓은 공익을 위해 개혁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일부 업계 리더들은 지속가능성 성과를 경쟁 우위 원천으로 삼고자 하는 속내도 갖고 있다.

덴마크 에너지 기업 오스테드(Orsted)가 전개하는 해상풍력발전 현장. 출처: 오스테드 홈페이지

지속가능성 활동에 걸맞는 비즈니스 성과 관건  

이미 자사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거나 긍정적인 영향을 늘리는 데 투자에 나섰다. 보고서는 유니레버, 네슬레, 페레로와 같은 소비재 기업의 사례를 들었다. 이들 기업은 2023년 발효된 EU의 ‘삼림 벌채 없는 상품 규정(Regulation on Deforestation-free Products)’을 지지했다.

삼림 벌채 문제를 해결하고 공급망 추적에 대한 개선 조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해당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쟁사보다 향후 낮은 비용을 들이는 등 생산성을 높이는 여건을 가질 수 있어서다. 일찍 전기차 생산으로 방향을 전환한 ‘볼보’도 내연기관 차량 면세 혜택을 반대하는 로비를 펼치며 선도적인 전기차 제조업체가 되기 위한 승부에 나섰다.

기후위기에 의한 해수면 상승 등 사회/환경 시스템 악화에 따른 위험 비용에 크게 노출된 기업들도 적극적인 로비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식음료기업 네슬레, 다논 등은 재료 수급 등 공급망이 처할 위험을 고려해 지속 가능하고 탄력적인 농업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을 찬성하고 있다. 경쟁 우위 강화, 제품의 시장 확대 등을 위해 기후 관련 정책 지지는 물론 투자에도 적극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지속가능성 활동에 투자하는 기업은 아직은 예외적인 사례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런 활동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정교한 방법이 나오지 않은 것이 주된 이유다. 보고서는 “기업이 지속가능성 옹호 활동을 강화하려면 이를 위한 비즈니스 사례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합당한 근거가 있다면 기업은 구체적인 목표와 기간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비(public affair)의 단계별 흐름. 출처: MITSloan Management Review Richard Roberts의 MAGAZINE SUMMER 2024 ISSUE / FRONTIERS, Why Companies Need to Lobby for Climate Policy(2024년 4월 22일)

외부 파트너와 불편한 협업이 출구일 수 있다

보고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옹호 활동이 성공하려면 △내부 역량 구축 △외부 파트너와 관계 구축이 필수라고 제언했다. 예를 들면 기업 내부에서 지속가능성을 놓고 대관 업무(Public Affair), 홍보, 전략 및 재무 담당 간 협력을 잘 꿰어야 한다.

또 실질적인 정책 변화 달성을 위해 기업과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연합'이 필요하다. 이때 예상치 못한 파트너와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다.  연합이 좁은 범위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인식되면 메시지가 무시될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합 당사자의 ‘불편한 협업’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신뢰를 쌓으려 상호 노력하는 관계라면 큰 결실을 맺는 경우가 많아서다. 2006년 브라질의 아마존 대두 모라토리엄 사례가 대표적이다.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대두 생산이 아마존 열대우림 벌채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맥도날드를 표적으로 삼았다. 이때 맥도날드는 방어 대신 그린피스와 협력해 브라질 정부와 함께 업계 전반의 해결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보고서는 기후정책을 위한 로비는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기업에게 선순환 구조 구축의 길을 터준다고 진단했다. 강력한 기후정책을 이끌수록 기후와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 축소는 물론 탄소중립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 혁신과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 정책 로비에 대해 기업이 가진 부정적인 관점이 바뀌어야 할 이유다.

물론 플라스틱 협약 논의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 석유화학업계 로비스트들도 있다. 그들은 지속가능성보다 산업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들은 협약 실효성을 약화하느라 분주하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열띤 로비는 기후 변화를 둘러싼 기업과 그 비즈니스의 새 판을 짜는 시금석이 되는 것만큼은 분명한 상황이다.

김이준수

김이준수 입니다. 기후시민(climate citizen)과 그린칼라(green collar)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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