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반도체업계, 저탄소 에너지 확보 ‘비상’

글로벌 시장에서 탄소 배출 감축이 주요 경쟁력이 되는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여전히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반도체 산업은 한국 GDP의 약 7%를 차지하며, 대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다.

글로벌 전자 산업 공급망 산업 협회인 SEMI가 지난해 펴낸 에너지 공동협력 백서(Energy Collaborative 백서) '국내 저탄소 에너지 확대 및 조달을 위한 과제와 잠재적 해결방안'은 현재 한국의 저탄소 에너지 비율은 36%(2022년 기준)로 OECD 주요국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라면서 정부가 2030년까지 53%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태양광·풍력 발전 확충 속도는 더딘 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2030년까지 목표했던 저탄소 에너지 확보량의 20~30%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의 약 83%가 전력 사용에서 비롯될 만큼 에너지 공급이 결정적인 분야다.

2030년 저탄소 에너지 수요 및 공급 간 격차 분석(TWh). 2030년까지 이미 발표된 기업 목표에 기반한 한국의 총 저탄소 에너지 수요는 150-175 TWh, 상향 조정된 기업 목표에 기반한 총 수요는 165-195 TWh 규모이다. 에너지 공급 부족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SEMI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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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은 203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에너지 공급 부족 문제가 가시화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RE100 캠페인에 가입한 한국 기업들이 2022년 확보한 재생에너지는 그해 전체 전력 중 단 9%에 불과했으나, RE100에서 인정한 전 세계 평균은 39%이었다.

현재 활용할 수 있는 구매 메커니즘에 따라 기업들은 15-30 TWh의 저탄소 에너지 공급 부족을 겪을 수 있으며, 이는 현재까지 발표된 총 기업 수요 중 약 20-25%에 달한다. 기업들이 섭씨 1.5도 상승 시나리오에 맞춰 탈탄소 목표를 상향 조정한다면 공급 부족분은 30-50 TWh(약 30%)로 늘어날 수도 있다. 지난 21일 제11차 전기본이 확정됐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에는 아쉬움이 여전하다.

게다가 한국의 국내 신규 재생에너지 사업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미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이 높아진 상황에서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사업에 대한 보조금으로 인해 소매 전기요금이 급격히 상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커졌다.

특히 한국은 신설 태양광 및 풍력 발전소에서의 전기 요금이 신규 석탄 또는 가스 화력발전소에서의 전기 요금보다 저렴하지 않은 2개 국가 중 하나다(2023년 블룸버그ENF가 설문조사한 국가로만 제한되며, 다른 국가는 인도네시아임).

2022년 한국의 육상풍력 발전 LCOE은 164원/kWh에서 166원/kWh 사이인 반면, 독일, 프랑스 및 스페인은 37원/kWh에서 71원/kWh 사이였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내 태양광 및 육상풍력 발전원가가 2030년까지 각각 94원/kWh과 128원/kWh사이, 123원/kWh과 150원/kWh사이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유럽의 LCOE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2022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내 다양한 발전소의 균등화 발전원가(LCOE)를 추정했다. LCOE란 각 발전소의 수명 전반에 걸친 평균 순현재 발전비용을 뜻한다. 2022년 한국의 유틸리티 규모 태양광 발전 LCOE36은 128원/kWh에서 155원/kWh37사이로,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추정한 독일(103원/kWh), 프랑스(80원/kWh) 및 스페인(60원/kWh)의 LCOE38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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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는 한국의 높은 원가는 구조적 약점에서 비롯한다고 지적했다. 일사량, 가용부지 등 지리적 환경적 문제 외에도 지역사회의 반발에 의한 이격거리 규제, 전력망 혼잡, 느린 인허가 프로세스 등은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와 반도체기후컨소시엄(Semiconductor Climate Consortium, SCC)이 공동 설립한 이니셔티브인 SEMI 에너지 공동협력(Energy Collaborative, EC)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4가지 정책적 해결책을 제안했다.

첫째, 발전소 입지 선정 과정에서 지역사회 협업 강화다.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태양광 및 풍력 발전소 건설 지연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지역사회 수용성을 차분히 점검하고 독일과 덴마크 등 재생에너지 확대 국가의 정책 사례를 참고해 국가 차원의 보상 체계 마련 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전력망 혼잡 해소 및 송전 인프라 확충이다. 현재 에너지 업계에서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신규 발전소 계통 연계 지연, 출력 제한 증가 부분이다. 또 민간 투자 유치를 통한 전력망 확충 부분에서도 일관된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태양광·풍력 관련 규제 간소화 및 신속한 인허가 절차 도입이다. 육상풍력 승인 절차 5~6년, 해상풍력은 10년까지 소요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원스톱 허가 시스템 도입으로 행정 지연 부분을 해소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정부의 계획에 따른 발전믹스, 퍼센트(%). 그래프에 나온 제11차 전기본 실무안과 2월21일 확정된 제11차 전기본 최종안과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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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소매 녹색 관세 제도 개편 및 기업 재생에너지 구매 지원이다. 녹색프리미엄 제도의 불투명성은 기업의 구매력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기업들의 구매 선호도는 11~1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서는 "한국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구매 방식에는 녹색프리미엄, 직접 PPA, REC 등이 있으나 기업들이 원하는 만큼 저탄소 에너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업이 구매한 재생에너지가 실제 탄소 감축에 기여했는지 불분명한 것도 문제다. 배출 감축 효과 인정 및 RPS(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제) 제도 외 추가적인 녹색 관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EC는 "정부가 소매 전력 배출 회계 방식을 개선하고, REC 등 기업들이 탄소 감축 효과를 신뢰할 수 있는 조달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EU는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CBAM)를 도입해 탄소 배출이 많은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며, 미국 역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통해 친환경 기업에 대규모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주요 시장에서 친환경 생산이 필수 요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저탄소 에너지 확대 정책을 적극 추진하지 않으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태양광 및 풍력 발전소 구축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 시장 및 규제 환경에 대대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EC는 "태양광·풍력 발전소 확대, 전력망 투자 가속화, 기업 구매 지원 등이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며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편집자 주: 이 백서는 '저탄소 에너지'를 운영 과정 동안 온실가스 배출이 아예 없거나 낮은 기술로 한정했다.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매스 및 바이오연료, 조력, 파력, 원자력 기술 및 청정수소 및 파생물 등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