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10곳 중 6곳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 달성 여부 미공개"

2020년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발표한 전 세계 1,401개 기업 가운데 약 1/3에 해당하는 320개 기업이 목표 달성 여부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목표를 달성했는지 밝히지 않았다는 것으로 관련 수치를 삭제 또는 변경하는 등 공개를 회피했다는 의미다.

올해 초 네이처 기후 변화 저널(Nature Climate Chnage)에 공개된 연구 논문 '기업의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의 결과에 대한 제한된 책임과 인식'에 따르면 목표를 달성한 기업 60.8%(633개), 달성에 실패한 기업 8.5%(88개), 달성 여부를 공개하지 않은 31%(320개) 등으로 나타났다.

각 기업이 탄소공개프로젝트(Carbon Disclosure Project, CDP)에 제시한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바탕으로 전 세계 1041개 기업의 감축 이행 상황을 분석한 이 연구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팀이 주도하고 미국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 등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스코프 1(Scope 1, 기업 자체 배출량)과 스코프 2(기업 사용 전력 등의 배출량) 가운데 80% 이상을 감축 범위로 포함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했다. 목표 달성 여부는 CDP 데이터,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서, 언론 보도 등으로 추산했다.

국가별 탄소배출량 목표 달성/실패/미공개 기업 숫자. 출처: 연구 논문
하버드 경영대학원 등

이를 국가별로 보면 전체 대상 기업수가 5곳인 싱가포르, 뉴질랜드가 감축 목표 달성률 1위에 올랐다. 유럽 국가 가운데는 영국 66%, 독일 65%로 앞서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친환경 정책이 불확실해진 미국은 71%로 파악됐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는 일본이 165개 기업 중 57개 기업이 감축 목표를 달성했고, 2020년 감축 목표를 제시한 기업이 4곳에 그친 중국이 그 절반인 2곳서 목표를 달성했다.

한국은 대상 기업 46곳 중 12개(26%) 기업만 달성에 성공했는데 이는 조사 대상 국가 33개 국가 중 최하위에 해당한다. 또 8개(17%) 기업은 실패했고 26개 기업(57%)은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 달성 여부를 공개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 기업의 과거 배출 데이터를 근거로 2020년 배출량을 추산하여 목표 달성 여부를 공개하지 않은 기업 10곳 중 6곳 이상(63.2%)은 해당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으로 예측했다.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 달성 기업의 비율이 낮은 산업 부문은 자재 및 에너지 부문으로 조사됐다. 자재 부문은 약 14%로 실패한 기업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에너지 부문은 실패한 기업은 2곳이지만 목표 달성 여부를 공개하지 않은 기업이 약 39%로 가장 높았다. 반면 달성된 기업의 비율이 가장 높은 산업 부문은 헬스, 금융, 부동산 및 정보 기술 업종으로 비교적 탄소 집약도가 낮은 산업들이었다.

브래드 스미스(Brad Smith) MS 회장, 애미 후드(Amy Hood) CF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CEO는 2020년 1월 15일 2030년까지 자사의 탄소배출량 마이너스 계획 발표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이미지 출처: MS 블로그, 사진 촬영 브라이언 스메일(Brian Smale) 
MS

언론 보도와 목표 달성의 상관성을 조사한 연구팀은 언론의 자유가 높은 국가에서는 달성 실패율이나 목표 삭제 비율이 모두 낮았다고 지적했다. 또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해 언론 보도가 많은 기업은 달성률이 높고, 목표 달성 여부를 회피한 비율도 낮았다고 분석했다

셜리 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주가를 비롯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기별 실적과 달리, 탄소배출량 목표에 대한 초기 발표는 시장 투자자와 미디어 등에 주목받지만 그 이후 달성 여부를 다루는 보도가 미진한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재무 정보를 파악하는 것처럼 정확한 공개를 의무화하고 시행하는 규제 기관의 모니터링과 옥스포드 넷 제로 트래커(Oxford Net Zero Tracker) 같은 외부조직의 활동에 주목했다. 기업의 자발성 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택배 기업 페덱스(FedEx)의 경우 2020년 항공기 탄소배출량을 30% 줄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배경으로 팬데믹과 공급 부족을 꼽았다. 대신 페덱스는 2005년 이후 항공기 배출 강도를 27% 줄이고 '2020 회계연도'에 200만 톤 이상의 이산화탄소 환산 배출량을 감소시킨 점을 부각했다.

2020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과학과 수학을 기반으로 2030년까지 마이너스 탄소배출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MS를 비롯 모든 기업은 탄소배출량 목표의 결과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닌 만큼 계속 관찰과 검증이 요청된다.

페덱스 2024 ESG 리포트 표지에서 캡처.
Fedex

연구팀은 "탄소배출량 목표를 달성했거나 달성하지 못한 기업을 제대로 판별하는 별도의 절차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익이나 손실은커녕 기업 내부적으로 이를 달성해야 하는 유인책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소배출량 목표와 그 달성을 둘러싼 의문부호가 증가하면 기업의 지속가능성 자체에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30개국 2,000명의 기업 재무 책임자와 815명의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회계법인 EY의 '2024년 글로벌 기업 보고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무 책임자의 69%가 "지속 가능성 및 기타 비재정적 가치 동인에 대한 투자자 문의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기업 담당자들의 96%는 "보고서의 비재무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절반 이상(55%)은 해당 산업의 관련 보고에 "'그린워싱' 요소가 포함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절반이 채 안 되는 47%의 응답자들만 기업이 명시한 목표의 달성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봤다.

2022년 말 기준 전 세계적으로 3,904개 기업이 배출 감소 목표를 설정했으며, 그 중 1,859개 기업이 과학 기반 목표 이니셔티브에서 2°C 시나리오에 부합하는 것으로 승인됐다. 현재 기업의 탄소배출량 공개를 둘러싼 규제 프레임워크는 아직 진행 중에 있는 만큼 '그린 워싱'을 차단하는 적극적인 보완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연구자들은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 성과를 이룬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물론이고 목표 달성 여부를 밝히지 않는 기업에 대한 언론과 ESG 평가기관의 꾸준한 역할도 요청했다. 또 규제 강도는 다소 후퇴하긴 했어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 공시 규칙 등과 같은 프레임워크의 작동을 포함하여 "기업의 분기별 실적 발표 날짜와 마찬가지로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 이행 성과 발표 날짜도 설정하면 미디어와 기타 이해당사자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