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국가에서 설정한 탄소중립(Net Zero) 정책은 중간 단계 목표(2025, 2030, 2035)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파리협정의 1.5°C 목표를 달성하기는 미흡하다는 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또 한국(석탄 신규 발전소 금지), 독일(석탄 사용 종료) 등 일부 국가는 석탄 및 화석 연료 단계적 철폐 목표를 수립했음에도 보조금 정책이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2월 COP28 유엔 고위급 전문가 그룹(HLEG)의 회의에서 출범한 '탄소중립 정책 태스크'가 최근 공개한 '탄소중립 정책의 중요성: 기업 및 금융 탄소중립 정책 개혁의 진행 상황 평가 및 정리(Net Zero Policy Matters: Assessing progress and taking stock of corporate and financial net zero policy reform)' 보고서에 따르면 G20 국가에서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기업 및 금융 정책의 숫자는 2020년 이후 3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정책은 주로 기업과 금융 기관의 탄소중립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전환 계획, 기후 공시, 조세 제도 및 지속 가능한 금융 지원 정책들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탄소중립 정책 가운데 하나인 기업 공시는 모든 G20 국가가 어떤 형태로든 도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초기에는 주로 온실가스 배출 공시에 중점을 두었으나, 최근에는 전환 계획 및 지속 가능한 분류 체계가 추가되는 흐름이다.
다만 보고서는 "G20 국가별로 정책 도구의 범위, 깊이, 목표 수준이 다르고, 개도국과 선진국 간 격차가 벌어져 있어 글로벌 협력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국가 간 탄소중립 정책 격차 크다
또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한 국가 대부분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나 의무적인 조항이나 규제 정책을 마련하지 않은 점도 주목했다. 기업 및 금융 기관에 탄소중립 전환 계획의 채택과 공시를 의무화 한 곳은 EU뿐이었다. 여기에 스코프 3(Scope 3) 배출량 공시로 이를 의무화 하는 곳도 EU 정도에 불과했다.
다수의 G20 국가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과 자연 보전 목표를 포함한 정책을 내고 있지만 화석연료 퇴출과 관련된 지속가능성 이슈와 적절히 통합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관련 정책들은 단순히 '피해를 줄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확산시키는 배경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G20 국가의 탄소중립 정책은 크게 증가했지만 파리협정의 목표와 부합한다는 근거로는 여전히 불충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G20 가운데 제3자 검증 및 보증을 요구하거나 권장하고 있는 국가는 13개국 정도이다.
보고서는 국가 간 정책의 조화와 표준화, 기존 탄소중립 정책에 기후 적응 및 자연 보전 요소의 결합,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강력한 규제 및 지원 정책 확대, 화석 연료 보조금 철폐 및 재생 에너지 투자 강화, 신뢰할 수 있는 공시 및 제3자 검증 의무화 확대 등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HLEG(High-Level Expert Group)는 유엔 사무총장의 탄소중립 목표 관련 고위 전문가 그룹으로, 기업, 금융기관, 도시 및 지역의 현황을 평가하고 강화하기 위해 설립됐다.
HLEG는 2022년에 발간한 'Integrity Matters' 보고서에서 구체적인 탄소중립 목표 설정, 화석연료의 단계적 축소 및 재생에너지 확대,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 투자 확대,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등 10가지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이번에 공개한 보고서는 G20 국가의 기업 및 금융의 넷 제로 정책-공개, 전환 계획, 건전성 규제, 분류체계 및 스튜어드십 등의 진척도를 파악해 관련 정책의 효용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 정부, 탄소중립 정책 '이중플레이' 논란
보고서는 석탄 발전소 신규 건설 중단, GHG(온실가스) 배출량 공시에서 탄소 회계 방법론의 표준화와 제3자 검증 포함, 전환 계획에서 지역사회 및 근로자의 권리 보호 노력 등 한국 정부의 관련 정책도 인용했다.
그러나 화석 연료 보조금 철폐, (국가 간) 정책의 통합, 공시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 담보 등 탄소중립 정책의 실제적 수행에 필요한 정책 뒷받침 등을 주문했다. 이 가운데 화석 연료 보조금은 화석 연료의 경제적 경쟁력을 유지시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를 저하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이중 플레이'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화석 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거나 철폐하고, 이를 재생에너지와 저탄소 기술 투자로 서둘러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 확대 및 세금 감면 정책 추진이 더 빠르고 실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스코프 3 배출량 공시, ISSB 기준 연계 필요
한국의 탄소중립 정책은 파리협정과 같은 국제 기준과 호환되도록 설계되었지만, 실행 과정을 둘러싼 의문도 여전하다. 국제 협력을 통해 탄소 시장, 탄소세, 지속 가능한 금융 표준화를 강화하고,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도 규제 준수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정책 프레임워크로 신뢰 구축에 나서야 한다.
또 기업과 금융 기관도 온실가스 배출량, 탄소중립 목표, 전환 계획 등을 정확하고 신뢰성 있게 공시하고, 제3자 검증을 통해 이를 검증받는 투명성 측면도 강화해야 한다. 기업 공급망에 대한 체계적 정보 확보, 제3자 검증 의무화 수준이 낮으면 한국 기업이 공시한 데이터의 신뢰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스코프 1, 스코프 2 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했지만 스코프 3은 아니다.
스코프 1, 2, 3 모두를 포괄하는 공시 의무화에 착수해야 하며, 제3자 검증 및 보증 시스템을 도입하여 데이터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확보하는 데 나서야 한다. 또 공시 기준을 글로벌 표준(예: ISSB, TCFD)과 일치시키고, 데이터의 상호 호환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기업 경쟁력 강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정책 대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