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투자 분야에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적 투자', '책임 있는 투자', '윤리적 투자' 등 다양한 개념이 유행했지만, 이제는 기후 변화의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과 자산을 보호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전략으로서 회복탄력성이 주목받고 있다.
에너지 전환 시대에 들불처럼 번졌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는 투자 시장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어 왔지만, 그 의미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ESG가 구체적인 투자 전략으로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는, 각 기업과 산업의 특성에 따라 환경과 사회적 요인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고, 지배구조 개선이 수익성 향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개념이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이는 정치적 논란과 무관하게 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시장의 변화에 따라 더욱 중요한 개념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회복탄력성 투자는 기후 변화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는 포괄적 접근 방식으로, '전환 금융(transition finance)'이나 '적응 금융(adaptation finance)'과 함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 시장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 기관과 주요 기업들은 기후 리스크를 반영한 투자 전략을 도입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등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직 회복탄력성 개념은 정치적 환경 속에서 각기 다른 해석과 대응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후 및 환경 관련 정책이 정치적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으며, 일부 금융 기관들은 탄소중립(Net-Zero) 금융 연합에서 이탈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후 정책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회복탄력성을 통해 기업과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과도한 기후 규제가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기후 및 환경 이니셔티브를 "사기"라고 주장해온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모든 해상 풍력 프로트젝트 중단을 공언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연방정부의 청정 에너지 프로그램의 예산을 삭감했다. WSJ는 "이러한 정치적 변수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전기 이동수단(e-mobility), 공공 인프라 등 기후 기술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블룸버그NEF 보도를 인용했다.
회복탄력성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투자와 연구를 진행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유럽 최대 기술 기업 지멘스(Siemens)는 고객의 경쟁력과 회복 탄력성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엑셀러레이터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 전력망 및 자동화 전문 기업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은 매출의 80%가 지속가능성과 관련돼 있는 곳으로 에너지 프로젝트의 50%를 신흥국에서 개발, 5천만 명의 신흥국에게 친환경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기업뿐 아니라 투자자들도 '회복탄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기후 변화는 지속적인 현상이며, 이에 대한 대응이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WSJ는 이제 "기업이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처리할 수 있는지 그 역량을 확인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필수적인 일이 됐다"고 강조했다.
국제상공회의소(ICC)는 지난 10년간 기후 변화로 인해 2조 달러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미국은 매년 허리케인, 산불 등으로 인해 수천억 달러 규모의 피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자연재해로 인해 경제적 손실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기후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투자는 보다 현실적인 이슈가 된지 오래다.
앞으로 기후 변화가 심화될수록 기업과 정부는 회복탄력성을 고려한 인프라와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금융 기관과 자산 운용사들도 기후 적응 능력이 뛰어난 기업과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늘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한 수익에 더욱 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실제 기술 부문은 회복탄력성 투자의 핵심 영역이 되고 있다. 스마트 그리드, 에너지 저장 기술, 탄소 포집 및 활용 기술(CCUS) 등 기후 리스크를 보다 정밀하게 관리하고 대응할 수 있는 솔루션은 시장에서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회복탄력성 투자의 실효성을 높여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필자 류종기 상무는 EY한영에서 지속가능금융(ESG)과 기업 리스크관리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으며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대학 겸임교수로 ESG 커뮤니케이션을 강의한다. IBM 리질리언스 서비스 리더,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기업리스크자문본부 디렉터를 역임하고,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겸임교수로 기후재난, 탄소중립, ESG를 연구, 강의했다. <매직 컨베이어 벨트: 지속가능한 공급망, 인공지능과 일의 미래(2024)>, <뉴애브노멀>, <밸런싱 그린>, <리스크 인텔리전스> 역자이며, <탄소중립과 사회 전환(2023, 공저)>, <리질리언스 9>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