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브랜드는 기후 대응 중심에 있다"

‘플라스틱 지구’는 일상을 플라스틱과 동행하며 날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쌓고 있는 지구의 현주소를 일컫는다. 19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던 플라스틱은 이제 ‘가장 위험한 발명품’이자 거대한 사회 문제의 도마에 오른지 오래다. 플라스틱은 성장의 재료였지만 기후 대응의 최대 난관이 되었다. 플라스틱 쓰나미가 닥친 기업들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해외 기업들은 다양한 플라스틱 감축 활동과 캠페인으로 브랜드의 새로운 미래를 도모하고 있다. 사회적·환경적 가치 창출을 중요한 목표로 삼은 캠페인을 통해 기업 BI(Brand Identity) 강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상당수 한국 기업이 플라스틱 비중을 줄인 제품이나 기업 홍보에 치중하는 것과 대비된다.

제품 홍보를 넘어 BI 차원으로 확장

코로나는 섬을 비롯한 해양 생태계를 조명한 브랜드 광고로 ‘해변 맥주’라는 건강한 이미지도 ‘덤’으로 얻었다. 신체에 붙은 플라스틱을 통해 심각한 오염의 양상에 경각심을 일깨운 ‘플라스틱 해변가(Plastic Beachgoers)’ 광고 작품은 2022년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클리오 어워즈(CLIO Awards)’에서 수상했다.

브랜드와 생태계를 연결한 유명 맥주 브랜드 ‘코로나(Corona)’의 사례는 인상적이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플라스틱을 줄이는 노력과 함께 ‘섬 보호’를 내세웠다. 해변의 깨끗한 환경에 초점을 두며 글로벌 ‘클린업(Clean-Up)’ 활동을 진행했다. 2020년까지 100개 섬을 보호하겠다는 미션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현재는 250개 이상의 섬 보호에 나서는 한편, 2022년 친환경 섬 만들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카리브해에 ‘코로나 아일랜드(Corona Island)’를 개장했다. 이 섬은 100% 천연 재료로 만든 건축물을 중심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제거 및 책임 있는 폐기물 관리 인프라 구현 등을 실현하는 휴양지다.

해안선에 널린 플라스틱 오염을 통해 역설적으로 정부와 시민, 기업 등의 집단적 무관심과 무분별한 투자 자본의 부작용을 드러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글로벌 비영리단체 ‘오션 와이즈(Ocean Wise)’와 협업해 지역민이 참여하는 해안선 청소의 방법을 제시했다.

구체적 내용을 담은 QR코드는 현장에서만 3만 3천 건 이상 찍혔고, 각종 미디어에 2020만 건 이상 노출됐다. 언론이 다룬 특집 기사만 150개를 넘었다. 이듬해 ‘플라스틱 빌보드(Plastic Collecting Billboard)’와 ‘플라스틱 건져올리기 토너먼트(Plastic Fishing Tournament)’도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기업의 미래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

'플라스틱 빌보드'는 해양 플라스틱의 80%가 강에서 바다로 유입된다는 점에 착안한 해상 광고판이다. 이 광고는 해안선과 수로 폐기물 제거에 이바지한다는 BI를 강화했고, 강에 널린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플라스틱 건져올리기 토너먼트'는 세계 재활용의 날(Global Recycling Day)에 착안해 물고기가 아닌 플라스틱을 낚는 독특한 낚시 대회였다.

낚아 올린 플라스틱 무게만큼 상금을 지급하고, 낚시꾼과 재활용 업체를 연결해 플라스틱 1kg을 물고기 1kg과 같은 가격에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멕시코, 남아프리카, 중국, 브라질, 이스라엘 등지에서 열린 낚시 대회를 통해 총 20톤이 넘는 폐플라스틱을 건져 올렸다. 이 광고도 2023년 클리오 어워즈에서 상을 탔다. 이 캠페인은 ‘환경보호’라는 당위성만 알리기보다 폐플라스틱 수거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지급한 점에서 갈채를 받았다.

코로나가 전개한 캠페인은 해양 환경보호에 힘쓰는 청량한 맥주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했다. 오랫동안 ‘깨끗한 바다’를 브랜드 자산으로 삼았던 캠페인의 일관성에 기반한 활동이었다.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해변과 해양을 강조한 BI 구축을 통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가장 눈에 띈 점은 NGO, 언론,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을 통해 캠페인을 진행한 대목이다. 사회적 책임과 함께 해양을 지키려는 실천과 노력이 돋보였다. 코로나 맥주를 선택하는 소비자에게도 작은 효능감을 부여하면서 브랜드 신뢰를 높였다.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쓰레기 섬’ 전 세계에 알린 디지털 기업

플라스틱 쓰레기 섬에서 제조사와 국적을 식별할 수 있는 쓰레기 6천여 개를 조사하니, 일본이 3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중국 32%, 남북한 10%였다. 일본의 경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잔해가 거든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유튜브 영상 ‘The Trash Isles’ 캡쳐.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등이 해류가 만나는 환류 지역에 ‘거대 쓰레기 지대(Great Pacific Garbage Patch)’를 만들었다. 1997년 최초 발견 당시 한국의 절반 크기였으나 쓰레기는 더 쌓였다. 2020년 기준 한국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160만㎢이고 무게는 8만 톤에 달했다.

영국 디지털 미디어 기업 ‘래드바이블(LADbible)’은 북태평양의 해양 쓰레기로 다가섰다. 비영리단체인 ‘플라스틱 오션 파운데이션(Plastics Oceans Foundation)’과 손잡고 ‘The Trash Isles(쓰레기 섬)’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쓰레기 섬을 치우기 위해서는 국가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봤다.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확산하고 유명인과 힘을 합쳐 행동 유도에 나섰다. 화폐, 국기, 여권, 우표 등을 제작했고,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들을 시민으로 끌어들였다. 24만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국가로 인정해달라는 탄원서에 서명했고 시민권을 획득했다. 앨 고어는 1호 국민이 됐다.

이들은 2017년 UN에 정식 국가 청원을 넣었고, UN은 이듬해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쓰레기 섬에 관한 관심을 유도했다고 평가하며, 쓰레기 섬을 정식 국가로 승인했다.

ESG 불모지인 한국 미디어 기업도 주목할 사례

특히 이 캠페인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연결됐고 다양한 미디어 채널을 통해 전파됐다. 해양 쓰레기의 심각성을 획기적으로 알린 이 캠페인은 국제적 협력을 통한 정책 개선과 해양 생태계 보호 및 국가적 이익 증진 등의 메시지로 사회적 책임 캠페인의 대표 사례가 됐다.

레드바이블은 이 캠페인으로 2018년 칸 국제 광고제에서 지속가능 경영, 디자인, PR, 소셜 인플루언서 등 8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디지털 기반 미디어 기업이 해양 생태계 훼손의 문제를 전하고 세계 각국 정부의 관심을 불러모은 것은 ESG 경영의 불모지인 국내 미디어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 넷플릭스는 2019년부터 발간하고 있는 넷플릭스 ESG보고서(Netflix Environment, Social & Governance Report)에서 브랜드의 역할을 “다양한 장르와 언어를 통해 최고의 스토리로 세상을 즐겁게 한다”로 규정했다. 더 나아가 ‘예스 앤드(Yes, And)’ 전략에 따라 탄소 중립을 목표로 삼은 넷 제로+네이처(Net Zero + Nature) 계획을 실행해왔다.

미디어 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과 달리 ESG 경영의 실천 방향과 방법 등의 논의가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상황이다. 레드바이블의 환경 캠페인, 넷플릭스의 체계적 접근 사례 역시 ESG 경영 활동의 관점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포장재 바꾼 월풀

월풀의 '플라스틱오프(Plasticoff)'

가전업계서 플라스틱 이슈는 제품 패키징 단계에서도 삐져나온다. 가전 브랜드 ‘월풀(Whirlpool)’은 포장재부터 바꿔 화제를 낳았다. 제품 포장재가 매립지를 거쳐 바다로 흘러가 해양생물, 나아가 인류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인식하고, 수용성(생분해성) 플라스틱(water-soluble plastic)을 포장 대체재로 개발했다.

이 포장재는 독성 잔류물을 남기지 않고 물에 녹는 폴리비닐 알코올(PVOH) 물질로 만들어졌다. 환경친화적이고 내구성이 뛰어난 덕분에 로션, 화장품, 풀 등에 쓰이는 재료다. 제품 포장 자체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월풀은 플라스틱 폐기물에 의한 해양환경 오염을 막는다는 취지를 품고 ‘Plasticoff’로 명명한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 캠페인은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칸 라이언즈(Cannes Lions)서 수상했다.

캠페인은 제품 판매 효과와 브랜드 이미지 제고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PVOH 포장재를 쓴 프리미엄 세탁기는 출시 직후 판매량이 월 5만 개에서 7만 개로 급증했다. 특히 월풀의 브랜드 이미지에 변화가 일어났다. 전통적인 브랜드에서 혁신적인 브랜드로 바라보는 관점이 늘었고, SNS에서 더 많은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월풀은 2025년까지 PVOH를 활용한 패키징을 6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처럼 해외 기업들은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제품 개발로 역량을 모으고 있다. 영국 스타트업 ‘낫플라(Notpla, Not+Plastic)’는 해초 추출물로 만든 식용 포장 ‘Ooho’를 만들었다. 일본 아사히 맥주도 2021년 맥주와 함께 안주로 먹을 수 있는 감자 재료의 식용 컵을 내놨다. "우리는 사라지는 포장재를 만듭니다(We make packaging disappear)" 슬로건을 내건 캠페인은 2021년 칸 라이언즈 디자인 부문 그랑프리 영예를 안았다.

국내 주요 기업, 기관의 플라스틱 캠페인 내용과 특징. 박선지 그래픽 디자이너. 출처: 에스코토스컨설팅

한국 기업도 '친환경 캠페인'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은 일회적 이벤트로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 친화적인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 기후위기에 대비하는 세계의 경쟁 기업, 촘촘한 환경 규제를 제기하는 각국 정부 등을 고려할 때 보다 근원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기업의 미래 목표 수립 및 실행과 연계할 수 있는 캠페인부터 고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