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공급망 실사 의무화…‘리스크 매핑’과 자원 추적 전략 시급

기업이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 및 인권 리스크를 식별하고 관리하는 것을 지칭하는 공급망 실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환경파괴 문제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실제 우간다-탄자니아 석유 파이프라인, 중국 바오터우 지역의 희토류 채굴장, 방글라데시의 섬유공장 등은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대표적 리스크 사례로 지목된다.

해당 사례들은 생태계 훼손, 강제 이주, 산업폐수 방류와 같은 문제를 일으키며, 공급망 상 환경 및 인권 침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여기에 미국, EU 등 주요 국가의 법제화를 비롯 국제사회의 ESG 책임 요구 강화 흐름 속에서 공급망 실사 이슈가 부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EU의 기업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을 비롯 분쟁광물 규정, 산림전용방지 규정, 배터리 규정, 핵심원자재법 등이 꼽힌다. 이들 EU 법령은 특정 원자재 및 제품의 조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기 위한 체계 및 절차를 요구한다.

지난해 7월 발효된 EU CSDDD는 기업이 자체 사업뿐만 아니라 자회사 및 협력업체 등 ‘활동 사슬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이를 예방·완화할 수 있는 조치계획을 수립·이행하도록 의무화한 것이 핵심이다​.

실사 관련 EU 주요법령. 표 출처: 이한경 (주)에코앤파트너스 대표이사 발표자료
이한경

특히 환경오염, 인권침해 등 ESG 리스크가 집중된 고위험 산업군 및 지역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실사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국내 기업 중 연매출 4억5천만 유로 이상 기업도 포함된다​.

EU 실사 지침은 단순한 ‘권고사항’이 아니라 법적 의무다. 기업은 매출 기준 및 고용 인원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사를 이행해야 하며, 위험 식별 → 조치계획 수립 → 점검 → 공시까지 총 6단계 실사 프로세스를 적용받는다​.

예방·완화 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경우, EU는 협력사와의 사업관계 중단이나 종료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단, 2025년 2월 기준 EU는 사업 종료 조항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개정 중이다​.

무엇보다 실사에서는 온실가스, 수질오염, 유해화학물질, 생물다양성 등 환경 요소에 대한 사전 평가 항목이 구체화됐다. 공급망 상 소재·부품의 제조·수입 과정에서 수은, 오존층 파괴물질, 폐기물 등 유해요소를 얼마나 취급하는지도 주요 평가 지표에 포함됐다​.

EU는 2025년 2월 ‘옴니버스 패키지(Omnibus Package)’를 통해 CSDDD의 본격 적용 시점을 기존보다 1년 연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EU 회원국들은 자국법 제정 및 공표 의무를 2027년 7월 26일까지로 미루게 되었고, 최초 가이드라인 발간 시점도 2026년 7월 26일로 앞당겨졌다​.

또한 최초 적용 대상이었던 2027년 7월 26일 기준은 삭제되고, 2028년 7월 26일부터 지침이 적용되는 것으로 수정됐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 중 EU 역내 매출이 4억 5천만 유로 이상인 기업은 2028년부터 공급망 실사 의무를 갖게 된다. 실사 대상 범위는 ① 기업의 자체 운영 ②자회사의 운영 ③기업의 활동사슬(Chain of Activities)에 있는 직접 협력사의 운영 전반이다. 단, 서비스와 금융 분야는 업스트림 단계만 해당된다.

한국 기업 대응 전략 체크리스트
플래닛리터러시

2029년부터는 유럽 단일 전자공시 시스템(ESAP)을 통한 공급망 실사 정보 제출도 의무화되면서, 국내 기업도 관련 시스템 구축과 공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흐름에서 국내 기업이 EU 수출을 안정적으로 지속하려면 공급망 내 리스크 매핑(mapping)과 기존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인권·환경 요소를 통합하는 등 실사 정책 수립을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리스크 매핑의 경우 원자재 수입부터 생산, 납품, 유통 전반에 이르기까지 직접·간접 협력사의 위치, 산업, 지역별 리스크 요인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EU 지침은 단순히 환경오염만이 아니라 ▲강제노동 ▲아동노동 ▲산림파괴 ▲수은·오존층 파괴물질 사용 등 폭넓은 범위의 환경·인권 이슈를 통합적으로 실사하도록 요구하는 만큼 국내 기업은 주제별 체크리스트 구성과 위험 우선순위 결정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또 환경·인권 위험요소를 정의하고, 중대한 변화 발생 시 이를 갱신하도록 규정하는 내부 기준과 검토 주기(예: 2년 주기 점검) 등 자체 실사 정책 수립 및 협력사 행동규범(Code of Conduct) 제정에 나서야 한다. 고위험 지역·산업에 위치한 협력사를 선별하는 사전 평가 지표를 설정하고, 심층 체크리스트를 통한 실사 능력을 단계적으로 고도화해야 한다.

특히 EU 지침은 2029년부터 실사 관련 내용을 연 1회 이상 의무 공시하고, 고충처리 절차 운영, 조치 이행에 대한 모니터링까지 요구한다. 배터리 자동차 섬유 광물 등 핵심 업종은 ESG 팀과 법무, 구매 부서를 중심으로 한 내부 TFT 구성과 함께, 공인 대리인 지정을 포함한 EU 내 행정 대응 시스템 마련에 나서야 한다. 특히 국내보다는 해외 사업장(협력사) 관리에 역점을 둬야 할 상황이다.

환경산업기술원 주관 세미나에서 '공급망 실사 개요 및 기업 대응 사례'를 발표한 이한경 (주)에코앤파트너스 대표이사는 "공급망 실사는 제품에서 전과정 밸류체인으로 기업의 책임범위가 확장된 것을 의미한다"며 "위험 국가 리스크 파악, 특정 국가 의존도 축소 등 전략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배터리규제, DPP 등 공급망 실사 기반의 자원 추적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