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8조 해상풍력 시장 현황과 과제
정부는 2년마다 향후 15년간 적용할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을 수립한다. 전력의 장기 수급 전망을 바탕으로 발전 설비를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담는다. 최근 11차 전기본 총괄위원회가 발표한 실무안(2024~2038년)에 따르면 2038년 국내 최대 전력 수요는 129.3GW(기가와트)로 적정 예비율 22%를 적용하면 2038년까지 국내에 필요한 발전 설비용량은 157.8GW 규모다.
이번 실무안서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는 10차 전기본 대비 태양광·풍력 발전 규모를 늘린 것이다. 2030년 태양광·풍력 설비 보급 목표를 기존 65.8GW에서 72.1GW로 높였고, 2038년 기준 99.8GW에서 115.5GW로 확대했다. 여기서 풍력은 2030년 18.3GW, 2038년 40.7GW 정도를 담당하다. 앞선 10차 전기본에서 2030년 기준 16.4GW였던 풍력은 다소 높아졌다.
5년 인허가...관련법 신속 처리 필요
풍력이 주요 전력원의 지위를 가진 셈이지만 ‘어떻게’는 여백이 많은 상태다. 지금 풍력 발전 분야는 해상풍력이 대세다. 육상풍력은 설치 부지 등의 문제로 신규 발전에 어려움이 있지만 해상풍력은 터빈 대형화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확대되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 등과 맞물린 전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추세가 해상풍력 산업에 든든한 밑천이다.
문제는 부실한 제도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해상풍력특별법(원스톱샵법)’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된 바 있다. 또 윤석열 정부는 2022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당시 해상풍력 사업 재검토 입장을 밝혀 얼룩이 진 상태다. 국내 시장의 성장 속도는 제대로 가속페달을 밟지 못하고 있다.
2022년 기준 국내 재생에너지 전체 발전 규모 23.0GW 중에서 풍력 비중은 1.9GW에 그쳤다. 올해 국내 해상풍력 설비용량도 0.12GW에 불과하다. 지난해 전 세계 해상풍력 설비용량이 64GW로 2011년보다 20배 이상 늘어난 데 비하면 아주 저조한 것이다.
국내 상업 운전 해상풍력발전단지는 제주 탐라(30MW), 서남권(60MW), 영광(34.MW) 등 3곳으로 모두 합쳐봐야 누적 설비용량이 124.5MW(0.1245GW)에 그친다. 풍력 발전 규모 확충을 위해선 5년 반 이상 걸리는 복잡한 인허가 과정의 걸림돌을 걷어내야 한다. 유럽 등 해외는 정부 기관 간 조율을 통해 통상 3년 내 인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밸류체인에 국내외 사업자 간 각축전
이런 가운데 해상풍력 발전 건설비는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현재 1GW당 7조 원으로 올라선 상태다. 2030년 18.3GW 보급을 위해서는 민간 중심으로 100조 원 이상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2024년 3월 현재 국내에서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허가받은 곳은 83개 단지로 설비용량은 27GW에 달한다. 여기에는 덴마크 오스테드가 사업권을 딴 1.6GW 규모의 인천 해상 풍력단지와 같은 초대형 단지도 포함돼 있다.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 투자가 본격화되면 국내 업체도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최근 해상풍력 사업 활성화를 위해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가중치를 현행 2.0에서 2.5로 높였다.
해상풍력 밸류체인을 살펴보면 크게 단지개발, 구매/제조, 설치/시공, 운영 등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기업은 △단지를 개발·운영하는 디벨로퍼(Developer) △풍력 발전기를 만드는 터빈 제조사(Wind Turbine maker) △타워, 하부구조물, 블레이드 등 부품을 만드는 부품 제조사(Components maker)로 구분한다.
각 역할과 국내외 사업자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디벨로퍼는 발전단지 개발에서 건설 및 운영에 이르는 프로젝트 전반을 담당한다. 해외 기업으로 이베르드롤라(Iberdrola, 스페인), 오스테드(Orsted, 덴마크), 넥스테라 에너지(NextEra Energy, 미국) 등이 있고, 국내 기업으로는 현대건설, 한화, SK에코플랜트 등이 담당한다.
터빈 제조사는 디벨로퍼에게 수주받아 터빈을 생산한다. 터빈은 육상풍력의 전체 설비투자(Capex)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3%, 해상풍력은 33.6%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해외 기업은 베스타스(Vestas, 덴마크), 노르덱스(Nordex, 스페인-독일), GE(Renewable Energy, 미국), 지멘스 가메사(Simens Gamesa, 독일-스페인), 골드윈드(Goldwind, 중국) 등이 있으며, 국내 기업으로 유니슨, 두산에너빌리티, 효성중공업 등이 참여한다.
부품 제조사는 타워, 베어링, 하부구조물, 전력 케이블, 블레이드 등 부품 제조 기업이다. 디벨로퍼나 터빈 제조사에게 수주받아서 부품을 생산한다. △타워 제조 해외 기업은 브로드윈드(Broadwind, 미국), 타이탄윈드에너지(Titan Wind Energy, 중국), 아르코사(Arcosa, 미국) 등이며 국내 기업으로는 씨에스윈드, 동국S&C, 유니슨 등이 있다. △블레이드는 TPI 컴포지트(TPI Composites, 미국), 국내 기업 휴먼컴퍼지트 등이 있다. △이 밖에는 베어링을 만드는 씨에스베어링, 하부구조물을 만드는 SK오션플랜트, 현대스틸산업, 세아제강, 해저 전력 케이블 시공을 담당하는 KT서브마린 등이 있다.
신안, 울산 등 해상풍력단지 개발 본격화
이렇게 재생에너지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해상풍력발 밸류체인(가치사슬) 참여자들 가운데는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도 여럿 등장한다. 국내외 해상풍력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해양에너지 가치사슬 확장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일구는 게 목표다.
디벨로퍼는 한화오션의 부상이 눈길을 모은다. 지난해 11월 당초 2천억 원으로 예정한 해상풍력 투자액을 3천억 원으로 높였고, 이를 수소 사업과 밸류체인으로 연계하는 계획을 잡았다. SK디앤디에서 분할된 SK이터닉스는 한화건설과 함께 390MW 규모 신안우이 풍력발전 착공에 돌입해 본격적으로 해상풍력 사업을 본격화한다. 계열사인 SK E&S도 코펜하겐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CIP)와 함께 전남 신안 지역에 총 900MW 규모 프로젝트를 올해 준공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27년까지 전남 신안군 인근 해상에 300MW 규모 해상풍력단지 개발 중이며 포스코E&C는 지난해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기업 에퀴노르와 울산 인근 해상에 750MW 규모 해상풍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울산 반딧불이’ 프로젝트 추진 중이다.
터빈 제조사인 두산에너빌리티는 설계조달시공(EPC) 중심으로 해상풍력 사업을 전개 중이다. 이들이 만든 8MW급 터빈은 상용화를 앞둔 상황으로 유사한 용량의 베스타스나 지멘스 가메사 터빈보다 블레이드 면적이 넓어 국내 해상과 같은 저풍속 지역에서 효율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풍력터빈 제조사 밍양과 합작법인을 세운 유니슨은 개발 중인 10MW급 해상풍력터빈을 내놓을 예정이며 해상 풍력 시장에서 25% 이상 점유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규 송·배전망 구축 적극 나서야 할 때
부품 분야는 글로벌 풍력 타워 시장 1위(점유율 약 17%)인 씨에스윈드가 하부구조물 시장 성장을 내다보고 덴마크 기업 블라트를 2천억 원에 인수했다. 블라트는 2025년 일감까지 확보한 기업이며, 씨에스윈드는 EU의 리파워EU(REPowerEU)법안,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수주량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하부구조물 분야 아시아 1위인 SK오션플랜트도 대만,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전역서 해상풍력이 인기를 끌며 수혜를 입고 있다. SK오션플랜트 주도로 24개 해상풍력 핵심 기자재 기업이 참여하는 해상풍력 얼라이언스를 구축했다.
LS전선은 진입장벽이 높은 해저케이블 분야에서 세계 4위 업체로 2025년까지 1차 사업을 통해 누적 용량 5.5GW 완공을 목표로 하는 대만 해상풍력단지 건설사업 8개 프로젝트에 대한 초고압 해저케이블 공급권을 모두 따냈다. 총 누적 수주액이 1조 원에 이른다. 포스코의 포항제철소 후판공장은 노르웨이 선급협회(DNV)에서 재생에너지용 강재 생산공장으로 인증을 받았다.
해상풍력 시장 곳곳에 기업 각축전에도 시장은 썩 밝은 표정이 아니다. 해상풍력특별법안,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 등 관계 법령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상태대로면 전기본 기본안의 보급 목표는 태양광으로 대부분을 채워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신규 송·배전망 구축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제주 및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소 및 동해안 신규 대규모 발전소 등을 수용할 수 있는 계통 여건이 미흡한 실정이다. 신규 건설 예정인 종축 및 횡축 국가 기간 HVDC 라인을 포함하여 무탄소에너지원을 좀 더 원활하게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이 필요하다. 법무법인 세종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이어 발표될 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의 내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