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닐 자원화는 신사업 기회 열까?
편집자 주: 플래닛리터러시는 'Climate Intelligence'를 테마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재생에너지 투자플랫폼(금융치료)', 지역 사회와 지구 환경을 지키는 맹그로브 숲의 가치에 이어 비닐봉지의 문제와 폐비닐의 자원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기후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의미를 다룰 계획입니다.
서울시는 7월부터 ‘폐비닐 분리배출 활성화 사업’을 펴고 있습니다. 편의점, 음식점 등 상업시설을 대상으로 폐비닐을 종량제봉투에 넣지 않고 분리배출해 자원화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물질이나 기름 등 액체가 묻은 비닐도 내용물만 비우면 분리배출이 가능해졌는데요. 상업시설(61만 곳)만 대상으로 한 이유는 가정(약 198만 가구)보다 관리 대상은 적지만 폐비닐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자원순환연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1인당 연간 비닐봉지 사용량 추정치는 하루 평균 1.15 개, 총 420 개입니다. 국민 전체로 보면 연간 216억 개 정도입니다. 1인당 기준 미국 365개, 그리스 250개, 스페인 120개, 독일 70개, 아일랜드 20개, 핀란드 4개 등에 비해 월등히 많습니다. 유럽 플라스틱·고무제조자협회인 유로맵(Euromap)이 63개국을 조사한 결과는 비닐봉지를 포함한 1인당 연간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량은 한국이 67.4kg(2020년 추정치)로 벨기에에 이어 2위였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펴낸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금지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국가 중 66%가 비닐봉지 사용을 법률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2002년 비닐봉지 금지를 처음 시행했습니다. 비닐봉지가 홍수 때 배수 시스템을 막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2023년 기준 비닐봉지의 전면 혹은 부분 금지 국가는 100개국이 넘습니다. 이 조처로 아일랜드는 비닐봉지 사용이 90% 줄었다고 합니다. 벨기에, 홍콩, 영국, 포르투갈도 74~90% 감소했으며 중국도 50% 줄었다는 통계 보고가 있습니다.
서울시, 비닐 재활용으로 자원화 선택
물론 한국 정부도 비닐봉지를 줄이는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2021년 제시된 ‘한국형(K)-순환경제 이행계획’에 의하면 2030년부터 비닐봉지를 포함한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합니다. 이에 따라 2022년 11월부터 편의점, 슈퍼마켓 등에서 비닐봉지, 종이컵 등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시행 직전 정부는 이를 자발적 참여로 바꿨습니다. 소상공인 비용 부담과 소비자 불편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정책 퇴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하루 폐비닐 양은 730톤(2022년 기준)입니다. 이 가운데 328톤(45%)은 고형연료 등으로 재활용되며 402톤(55%)은 종량제봉투에 배출돼 소각되거나 매립됩니다. 비닐봉지의 탄소 배출량은 영국 환경청 조사 결과(2011), 1.58㎏CO2eq 정도인데요. 차로 8km를 달리는 것과 같은 배출량입니다.
만약 2022년 기준 매립 폐비닐을 소각했다면 온실가스는 11만2343톤CO2eq가 추가 발생했을 텐데요. 또 그동안 매립되던 종량제봉투를 태운다면 서울시 소각시설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3년(41만172톤CO2eq) 대비 27.3%나 증가한다고 합니다. 종량제봉투 내 플라스틱 함량도 2013년 8.8%에서 2022년 29.9%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종량제봉투 내 플라스틱 중 비닐(필름)류가 52%(페트병 17%, 스티로폼 3%)로 월등히 많습니다.
2017년 BBC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블루 플래닛>은 플라스틱에 대한 윤리적 각성을 불러왔고, 2018년 중국의 폐비닐 수입 중단(폐기물 금수조치)은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한국서도 수도권 폐비닐 수거 중단 사태로 이어질 만큼 논란이 커졌는데요. 폐비닐이 종량제봉투에 담겨 소각되면 일반쓰레기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또 매립하는 경우도 썩지 않기 때문에 매립장 용량과 수명도 줄어듭니다.
선진국 폐기물 사업 반면교사 삼아야
무엇보다 폐비닐은 지속가능성과 배치됩니다. 애초 비닐은 플라스틱 용기로 재활용하거나 열분해로 재자원화의 길을 열어뒀지만 이물질 처리 등의 문제로 재활용이 어려웠습니다 서울시가 '소각'으로 방향을 잡은 것도 2026년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가 예고된 있는 등 여러 문제를 감안한 조치입니다.
서울시는 일단 기존 화분, 건축자재, 고형연료 등으로 폐비닐을 재활용하는 것 외에 화학적 재활용으로 다양한 산업에 재활용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LG화학, SK지오센트릭과 폐플라스틱 열분해 활성화 업무협약을 맺고 시범사업을 진행했는데요. 기업이 적극 참여를 하는 것은 폐비닐 자원화로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분해는 폐비닐을 300~800℃ 고열로 가열해 플라스틱 생산 원료인 열분해유를 생산하는 공정입니다.
하지만 폐기물 연료화 사업을 추진한 선진국의 경우 썩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미국 75개 소각장은 매년 약 3400만 톤을 소각하지만 미국 내 에너지의 0.2%를 생산합니다. 영국은 그 비율이 조금 더 높긴 하지만 2.5% 남짓입니다. 일본은 가정 쓰레기의 78%를 소각하나 재활용률은 20%에 그칩니다.
일부 소각장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자 신기술을 도입하고 있지만, EU는 일부 폐기물 연료화 공장에 대해 탄소중립과 폐기물 감소 목표량을 달성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부적격 판정을 내렸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쓰레기를 열심히 태우는 덴마크도 최근 국가 재활용 계획과 맞지 않는다며 소각 능력을 30%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정교한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 관건
화학적 재활용을 둘러싼 국내외 다른 관점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한국은 플라스틱 폐기물 소각을 통한 에너지 회수를 재활용에 넣지만, EU 등은 플라스틱을 원료로 바꾸고 다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물질 재활용만 재활용으로 봅니다. 2017년 기준 한국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 비율은 약 62.0%였지만 이중 물질재활용은 22.7%에 그쳤습니다. 같은 해 EU의 물질재활용률은 약 40%였습니다.
폐비닐 자원화에 대해 ‘쓰레기 박사’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지역 순환 완결형 체계’ 구축을 언급했었는데요. 폐비닐 선별이 확실해야 물질재활용 기반을 만들 수 있으므로 이윤만 바라보고 덤벼드는 것이 아닌 검증받은 시설을 갖춘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또한 주민 수용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지어진 대형 소각장들은 짓기 전 갈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폐기물처리의 핵심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홍 소장은 “고형연료 발전소도 주민 수용성을 전제로 지역이 발생하는 폐비닐을 순환시키는 거점 공공인프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재활용은 수질오염, 대기오염이 적게 발생하고 땅에 묻히거나 태워질 쓰레기양을 줄여줍니다. 열쇠는 생산단계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형성하는 일입니다. 기업, 소상공인, 시민, 행정 등이 골고루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통해 협력해야 합니다. 이 협력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때 버려진 비닐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 기술적‧사회적 혁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1959년 스웨덴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Sten Gustaf Thulin)은 나무를 자르는 등 환경을 해치고 내구성이 낮아 일회용으로 쓰이는 종이봉투의 한계를 극복한 비닐봉지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 높은 산소 차단력과 방수 기능 등의 편리성, 여러 색과 디자인이 가능한 기능성 등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용과 폐기로 환경 오염이 발생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5조 개의 비닐봉지가 사용된다. 매시간 지구를 7번 덮을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물량이다. 비닐봉지 한 장당 평균 사용 시간은 25분에 그친다. 그런데 분해에는 무려 500년 이상 걸린다.
썩지 않는다는 특성이 되레 땅과 바다 생태계를 뒤흔드는 셈이다. 가령 바다로 흘러간 비닐봉지를 섭취해 목숨을 잃는 해양 동물은 매년 10만 마리에 달하고 있다(2021, The World Counts). 더구나 비닐봉지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은 먹이사슬에서 해양생물을 거쳐 인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