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리사이클 수명주기 관리가 핵심
플라스틱이 인류의 사회문제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수명 주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어지간히 썩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완전 분해까지 500~1000년, 혹은 그 이상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과 같은 플라스틱 형태가 등장한 시기가 1909년(베이클라이트)이었으니, 우리는 아직 플라스틱 분해를 경험하지 못했다.
사실 플라스틱은 수명주기 모든 단계에서 인류와 환경‧기후를 위협한다. 우선 원료 추출과 제조 과정에서 유해 화학물질을 내놓는다. 사용 단계에서 화학 첨가제가 노출되고 폐기 단계에서도 유해 물질을 내놓아 환경과 생물에 악영향을 미친다. 자연분해에 걸리는 시간도 다른 물질보다 상대적으로 길다.
하지만 지금 인류가 쌓아온 문명은 ‘플라스틱 없는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 생물학자 데이비드 반스는 “지구 표면에서 최근 벌어진 변화 중 가장 도처에서 발견되고 가장 오래 영향을 미칠 변화를 꼽으라면 플라스틱의 축적과 파편화”라고 말했다. 플라스틱은 발명 이후 인류에게 이중적으로 작동한다.
미국 과학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은 <플라스틱 사회: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에서 이렇게 말했다. “플라스틱을 그렇게나 환상적인 물질로 만들어 준 바로 그 특성들(가벼움, 강함, 오래 감) 때문에, 플라스틱은 자연 세계에 방출되면 재앙의 물질이 된다.”
플라스틱 사용 뒤 어떻게 재활용할까
오늘날 플라스틱 오염은 지금 선을 넘어섰다.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과 지구를 위협한다. 독일 싱크탱크 아델피(Adelphi)의 닐스 시몬 박사는 방치된 폐기물을 치우는 일이 가장 시급한 한편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플라스틱 수명주기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고 생산 이후 안전한 플라스틱 순환을 위한 조치를 역설했다.
그 조치의 핵심은 재활용이다. 현재 사용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폐기물을 소각해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활용하는 열적 재활용 △단일 재질이나 이물질이 제거된 플라스틱을 물리적으로 가공해 펠릿을 만들어 다시 사용하는 물질 재활용 △화학 공정으로 폐플라스틱을 분해한 뒤 원료, 고분자 형태로 활용하는 화학적 재활용 등이다.
각 방법마다 장단점이 있으나, 물질 재활용이 가장 큰 비중(90% 이상)을 차지한다. 쉽고 안전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다만 유럽연합(EU)이나 국제기구는 열적 재활용을 재활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소각 시 발생하는 유해 물질이 재활용의 궁극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학적 재활용도 분해 과정에서 많은 온실가스 배출, 유해 물질 생성 등으로 탄소중립 목적 달성에 적합하지 않아 EU 등 많은 국가에서 물질 재활용만 재활용 방식으로 여긴다.
물질 재활용도 단점이 있다. 가공 과정에서 이물질이 섞여 강도, 탄성 등 기능이 떨어질 수 있어 재활용된 플라스틱 활용 분야가 제한적이다. 재활용 공정이 반복될 때마다 분자 결합력이 약해져 품질도 떨어진다. 특히 수거한 플라스틱 선별과 세척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있고, 이물질 제거를 위해 사용하는 고온의 양잿물로 인한 수질오염이 야기될 수 있다.
모든 공정서 재활용률 낮추는 문제 발생
플라스틱 재활용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뚜렷하다.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은 2000년 1억5600만 톤에서 2019년 3억5300만 톤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2019년 기준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하다. 나머지 91%는 사용 뒤 버려진다. 이를 세분화하면 19%는 소각, 50%는 매립되고 나머지 22%는 통제되지 않는 쓰레기장이나 노천 등에 폐기, 누출된다.
이 과정에서 610만 톤이 물속 동식물 환경에 침투했고, 170만 톤이 바다로 들어갔다. 바다에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약 3천만 톤 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플라스틱 재활용 범위와 기준이 제각각이다. 2021년 기준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57%(2021년 기준)로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세계 평균(9%)뿐 아니라 EU(32.5%)보다 높다.
하지만 EU는 폐기물을 에너지화한 에너지 회수(열적 재활용)를 재활용으로 보지 않는다. 물질 재활용만 인정한다. 반면 한국은 열적 재활용을 포함하나, EU 기준에 맞추면 한국 내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27%로 크게 떨어진다.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이처럼 떨어지는 데는 큰 이유가 있다. 모든 공정(발생-배출-수거-선별-처리)에서 발생하는 애로 때문이다. 특히 배출, 수거, 선별에서 문제가 두드러진다. 배출 과정에서 페트병, 비닐, 뚜껑 등으로 나눈 뒤 깨끗이 씻어서 분리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귀찮다는 이유 등으로 일괄 폐기되는 양이 너무 많다.
수거할 때도 동일 색상이나 재질로 된 플라스틱이 모여야 하지만 수거 시 물리적 한계로 한꺼번에 취합한다. 선별 과정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크기가 작은 플라스틱을 선별하기 힘들뿐더러 이물질, 다른 색상과 재질이 섞여서 선별이 쉽지 않다.
문제 해결 열쇠는 일회용 식품 포장재에 있다
2023년 그린피스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페트병 수거율은 85%에 달하지만, 실제 재활용률은 10%에 그친다. 적절한 방식으로 공병 수거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분류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끌어올리고자 2003년부터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EPR)’를 시행하고 있다. EPR은 제품에 일정량 이상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이행하지 못하면 부과금을 물리는 제도다. 대상도 2003년 12종에서 현재 28종으로 늘었고, 재활용 양도 2002년 93만8000톤에서 2021년 195만8000톤으로 늘었다.
다만 매출액 연간 10억 원 미만이거나 출고량 4톤을 넘지 않으면 재활용 의무 대상에서 빠진다. 영세업자 보호 조치이나 플라스틱 제품생산 감축 및 재활용률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되레 지난해 투명 페트병 재활용의무율을 기존 80%에서 76.3%로 낮추는 등 정책은 역행하고 있다. 이에 대상 기업과 제품군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플라스틱협약 정부 간 협상’ 제5차 회의를 앞두고 자원순환 정책 강화 등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기업들의 혁신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세지고 있다.
그린피스가 2023년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조사한 결과, 1인당 일주일간 41.3개의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사용 뒤 쓰레기 배출량을 보면, 식품 포장재가 차지하는 비율이 4년간 75%(2020년 71.8%, 2021년 78.1%, 2022년 73.2%, 2023년 78.3%)에 달했다. 또 이 조사에서 집계된 제조사 총 4524개 가운데 상위 10개 식품 제조사가 내놓은 일회용 플라스틱은 전체에서 22.1%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 10개 사는 전체의 0.22%에 불과하다.
이를 보면 식품 제조사가 플라스틱 오염 해결을 위한 변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식품 포장재를 세분화하면 ‘생수 및 음료수’가 48.1%(3만2373개)로 절반가량 차지한다. 전체 일회용 플라스틱을 놓고 봐도, 이는 37.6%로 우리가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3개 중 1개가 일회용 음료에서 나온다. ‘과자·간식류’ 19.6%(1만3194개), ‘가정간편식류’ 14.3%(9639개)가 뒤를 이었다.
사용량 공개, 리필 기반 시스템 도입해야
생수 및 음료수 상위 5개 제조사(롯데칠성음료,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삼다수, 코카콜라, 쿠팡 PB상품 탐사수, 동아오츠카)가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는 전체 생수 및 음료류 플라스틱 쓰레기의 30.8%에 달한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3년간 조사에서 꾸준히 1위를 차지하는 한편 다른 기업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배출량을 보이고 있다.
이들 기업은 최근 경량화와 무라벨 등 플라스틱 쓰레기 절감에 나서고 있음을 적극 알리고 있다. 하지만 눈속임이라는 비판이 있다. 절감한 양보다 더 많은 양의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이들은 플라스틱 사용량을 밝히지 않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 재사용 및 재활용 시스템 도입 및 확대라는 근본 해결책 도입에는 미적지근하다.
2020년부터 매년 시민들이 일주일간 사용 뒤 버린 플라스틱을 기록하는 배출량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그린피스는 궁극적 해결책인 재사용과 리필 계획을 가진 기업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기업은 매년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재사용과 리필 기반 시스템을 도입해 플라스틱 폐기물을 절감할 수 있는 실질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EU의회는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 규제안(포장 및 포장 폐기물 규정)을 통과시켰다. 2030년까지 포장재 폐기물을 2018년 대비 5% 줄이는 것을 뼈대로 한다. 감축 목표는 2035년 10%, 2040년 15% 등으로 단계적으로 올린다. 음료 제조업체들은 2030년부터 제품의 10%를 재활용 포장에 담아 판매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이 밖에 과일과 채소, 패스트푸드 매장 조미료, 샴푸 등 호텔 어메니티(일회용 욕실 용품)의 플라스틱 포장이 금지된다.
재생 원료 사용률 30% 의무부과...갈 길은 멀다
플라스틱 재생 원료 사용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2년부터 음료병을 만들 때 재생 원료를 15% 이상 쓰도록 의무화했고, 2025년 25%, 2030년 50% 이상 높이도록 목표를 잡았다. 캐나다도 2030년까지 모든 플라스틱 포장의 50% 이상을 재생 원료로 만들도록 목표를 수립했다. EU도 2025년부터 페트병 용기 소재의 25%, 2030년 30% 이상 재생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2019년에 이미 내놨다.
이처럼 각국 정부는 플라스틱 용기 제조 시 재생 원료 사용률을 늘려가는 추세다. 이에 국제재생표준(GRS)이나 지속가능성 및 저탄소 제품 국제인증제도(ISCC) 같은 인증제도 확산일로다. 한국은 2030년까지 페트병 생산 시 재생 원료 사용률이 30% 이상 되도록 의무를 부여할 계획이지만 난관은 여전하다. 지금도 투명 페트병 수거율이 낮고 다른 플라스틱과 함께 버려진 페트병이 쌓이고 있다.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국제플라스틱협약 정부 간 협상’ 제5차 회의서 물꼬가 터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