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에너지 미국 진출 '기회의 창' vs 국내 산업 공동화
한미 양국은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7차 통상정책회의를 통해 관세협상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핵심 내용은 한국 수출품에 부과되는 관세율 15%와 향후 4년간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산업 공동 투자다.
이번 협상 타결로 태양광·배터리·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미국 시장 진출 문턱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기업들에겐 '기회의 창'이 열렸다는 것이다. 반면 국내 생산기반 약화와 기술유출, 고용 공동화에 대한 그늘도 드리운다.
이미 미국 현지 생산법인을 통해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혜택을 누리고 있는 국내 태양광 및 2차전지 기업들은 대표적인 수혜 분야다.
미국 투자 확대...‘국내 텃밭’ 지킬 전략은?
태양광 밸류체인 수직 통합을 추진 중인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이하 한화큐셀)은 2023년 미국 조지아주에 잉곳·웨이퍼·셀·모듈을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솔라 허브(Solar Hub)' 통합 생산단지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향후 모듈 연간 8.4GW, 셀 3.3 GW 규모 생산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한화큐셀은 올해 6월 미국 태양광 모듈 재활용 사업 브랜드인 ‘에코리사이클 바이 큐셀(EcoRecycle by Qcells)을 출범하는 등 시장 지배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메이드 인 코리아’ 기술의 미국 시장 안착에 긍정적이지만, 핵심 기술과 자본이 국내가 아닌 미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은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협상으로 미국산 에너지(천연가스·원유 등)를 향후 4년간 1,000억 달러어치 구매하기로 약속한 조항은 부담이다.
LNG 수입 확대...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영향?
전문가들은 "에너지 안보 다변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국산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는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LNG 수입 확대다. 일시적으로 에너지 안정성을 높일 수 있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는 국가 탄소중립 전략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LNG 주요 공급망은 중동과 호주다. 미국산 LNG 비중은 12%에 불과하지만 2032년까지 약 40%에 달할 수 있다.
정부는 해당 조항이 ‘시장 수요 기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에너지 소비 계획 수립 단계에서 미국산 자원의 우선 순위가 높아질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기회는 맞지만 준비는 부족”…정책·R&D 보완 시급
국내 산업 생태계의 공동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이 있지만 국내 고용·기술·생산기반은 자칫 허물어질 수 있어서다.
중소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기술력은 있지만 해외 투자 여력이 부족해 대기업 중심의 미국 진출 흐름에서 소외될 가능성도 높다.
정부의 중장기적 산업 정책과 R&D 전략이 효과적으로 뒷받침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공동 투자 펀드 조성, 기술 공유 플랫폼, 내수 우대 조달제도 등의 방안 등 다각도의 지원 정책이 서둘러 제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관련 기업 간 협업을 유도하고, R&D 성과가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실증 테스트베드 및 인허가 절차 간소화 지원 등 입체적인 정책 패키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국내 산업계에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단연 재생에너지와 전략소재 산업이 있다. 특히 태양광, 2차전지, 수소연료전지, 그리고 풍력발전 관련 부품업체들이 단기적 수혜 기대주로 주목받는다.
가장 큰 수혜 분야는 단연 2차전지 산업이다. 미국 정부는 자국 내 전기차 및 배터리 생태계 육성을 위해 IRA 세액공제와 함께 현지 생산 요건을 강화해 왔다.
이번 관세 인하로 한국산 소재 및 장비의 경쟁력이 회복되면,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3사...2차 전지 시장서 확고한 입지 전망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오하이오 공장에 이은 아리조나 신공장이 하반기 본격 가동한다. GM 등 미국 기업과의 합작법인 수주에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 스텔란티스와의 합작공장 2차 투자가 가시화하는 삼성SDI는 고에너지 밀도 배터리 개발로 프리미엄 시장 공략이 관건이다.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은 양극재 및 전구체 생산 확대로 미국 현지 고객사와의 공급계약 체결 가능성이 높아졌다. 원가 부담이 줄고, 수입부품 비율 규제 완화 효과까지 맞물릴 경우 공급망 안정성과 가격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태양광’… 한화큐셀·신성이엔지, 美시장 확대 발판
태양광 모듈 및 부품 분야도 한미 협상의 대표적 수혜처다. 이미 조지아주에 현지 공장을 두고 있는 한화큐셀은 미국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서 독보적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현지서 한국산 부품 수입이 늘어나면 국내 협력사들도 동반 수혜를 누릴 수 있다.
신성이엔지는 스마트팩토리형 태양광 모듈 라인 확대로 BIPV(건물일체형 태양광)와 연계된 미국 건축시장 진출이 유력하다.
업계는 태양광 인버터·PCS(전력변환장치)를 공급하는 LS일렉트릭, 두산, 삼강엠앤티 등도 미국 프로젝트 참여 가능성이 열렸다고 기대감을 보인다.
‘수소·연료전지’… 두산퓨얼셀·범한퓨얼셀, IRA 수혜 겹쳐
미국 내 친환경 수소 생산과 연료전지 발전 확산 기조도 주목된다. 한국 수소기업들 가운데 두산퓨얼셀이 앞선다.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 기반의 대형 발전시장에서 경쟁 우위로 미국 전력회사와 공동 실증을 추진 중에 있다.
범한퓨얼셀은 선박용·이동형 연료전지에서 미국 국방부·해안경비대 등 공공시장 대상 영업 강화의 결실을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청정수소에 최대 kg당 3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있다. 한미 간 수소기술 협력 협정으로 시장 확대에 날개를 달 수 있다.
‘풍력 및 부품산업’… 조선·중공업 연계 수혜주는?
해상풍력 확대를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미국 시장은 국내 조선·중공업 기반 풍력 부품 기업들이 EPC(설계·조달·시공)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얻게 됐다.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작기술을 보유한 삼강엠앤티는 최근 미국 동부지역 풍력 프로젝트 예비 입찰에 참여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미국 풍력단지용 부유식 플랫폼 개발에 나서고 있다.
관련 기자재·터빈 블레이드·전력변환장치 분야는 효성중공업, LS전선, 유니슨 등이 수혜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중소규모 기업이 자력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엔 장벽이 여전히 높다. 업계는 수출 보조, 법률자문, 공동 브랜드 구축 등에서 정부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역할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