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균형...기후 위기와 新양극화

챗GPT(ChatGPT) 같은 생성형 AI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AI와 에너지는 어느덧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챗GPT를 한번 실행하는 데 드는 전력은 구글 검색의 수십 배에 달한다. 이것은 기술 혁신의 차원을 넘어 기후 대응과 직결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환경 문제로만 이야기할 것도 아니다. ‘기후 변화’와 ‘기후 위기’라는 두 개념 사이에는 결정적인 시각 차이가 있다. 기후 변화는 점진적 적응을 전제하지만 기후 위기는 근본적인 구조 전환을 요구한다. 현재의 기상이변과 전력 인프라의 불안정성은 후자에 더 가깝다.

폭염이 일상화된 도시, 작업이 멈춘 건설 현장, 냉각 비용으로 고민하는 데이터센터. 더 이상 이것은 먼 미래의 예고편이 아니라 지금의 일상이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의 진입 시작됐다

오늘날 인류는 기존의 기술과 제도, 시스템이 쓸모없어지는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계절의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고, 에너지 공급망의 안정성도 흔들린다. 폭염으로 인한 전력 수요의 급증과 동시에 태양광 발전 효율이 저하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농작물 재배 주기의 변화, 물 부족,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개인의 삶부터 국가 경제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며, 대부분의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구시대적 예측 모델에 머물러 있다.

기후 위기 해결의 해법은 결국 에너지로 귀결된다.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개선, 탄소중립 기술 개발 등 다양한 방법이 주목받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재생에너지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물리적 거리, 송전망의 한계, 에너지 저장 기술의 미성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양극화다.

대표적으로 농촌 지역의 태양광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겉보기엔 상생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토지 용도 변경에 따른 식량 안보 문제, 외부 투자자 몫으로 돌아가는 에너지 수익의 집중, 지역 주민의 생활 기반 상실 등 구조적 불균형이 일어난다.

게다가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정보 격차는 새로운 양극화를 야기한다. 전기차 충전소 입지 선정이나 수소경제 기술 투자와 같은 사안에서 '정보를 먼저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진다.

그린란드 북서부의 툴레 분지(Thule Basin)에 있는 충적 사광(사금) 퇴적물에 매장되어 있는 일메나이트(Ilmenite). 일메나이트는 티타늄 원료 광물로 항공기, 우주 산업, 의학용 임플란트, 페인트 및 플라스틱의 백색 안료로 널리 사용된다.
편집자 주: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희토류를 비롯한 희귀 광물 수요를 충족하는 동시에 환경을 보호하는 복잡한 균형점은 기업과 기업, 국가와 국가 간 긴장과 격차를 일으킨다. 공급망 이슈는 다자간 글로벌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성에 도달하려는 모두에게 끊임없는 의문과 과제를 제기한다.

특정 집단 간 패권 경쟁...깊은 격차 발생

더 나아가 해상풍력권 확보 경쟁, 희토류 확보전,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전력 확보 경쟁, 전기차 배터리용 리튬 채굴권 확보, 탄소배출권 시장에서의 주도권 싸움 등은 이제 국가 간, 기업 간 패권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미래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달려있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환경 메시지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서의 주도권 선언이었다.

전통적인 에너지 기업들과 신규 플레이어들 사이의 충돌도 격화는 그 전초전이다. 기존 석유화학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 시장에 진출하고 있고, 구글,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독자적인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투자의 수익성, 새로운 기술의 상용화 시점, 정부 정책의 변화 방향 등 핵심적인 정보들의 흐름은 특정 집단에 유리하게 작동한다.

예를 들어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초기에 최적 입지를 선점한 기업들과 뒤늦게 뛰어든 기업들 사이의 수익성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수소 경제로의 전환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고 관련 기술에 투자한 기업들과 그렇지 못한 기업들의 운명도 크게 갈린다.

기술 만능주의 경계...정의로운 전환 나서야

이렇게 ‘메타 위기’의 본질은 기후 자체의 위상을 재고하는 단위가 아니라 그 대응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보의 비대칭성,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들어있다.

환경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새로운 형태의 착취와 소외가 정당화 되고,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균형이다. 기후 위기 대응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새로운 불평등 구조를 방관할 수도 없다. 필요한 것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혜택과 부담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메커니즘이다.

정부는 에너지 전환의 과실이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투명성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기업 역시 사회적 책임에 적극 나서야 하며 시민은 정보 접근권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기후 위기는 모두의 문제이지만,  그 해결 과정에서 또 다른 위기를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 에너지 패권을 향한 경쟁이 결국 모두의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어지도록, 우리는 더욱 세심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