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석유화학 산업, 단계적 투자·융합적 전략 필요

2017년 기준 국내 전체 에너지 소비 중 산업부문의 비중은 61.7%(원료용 포함)로 OECD 평균보다 매우 높은 수준으로, 감소세를 보이는 다른 나라와 달리 지속해서 상승하는 추세다.

1인당 에너지 소비는 1990년에 OECD 평균의 50% 수준이었으나 2017년에는 140% 수준으로 증가했고, 일본과 독일을 각각 2001년, 2002년에 추월했다. 2008년에는 OECD 평균을 추월하는 등 대규모 집중형 에너지 공급정책에 따른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구조의 특성을 띤다(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2017).

이같은 상황에서 석유화학 업종은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에 취약한 대표적인 산업 분야인 동시에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으로 꼽힌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온실가스 직접 배출량의 약 37%는 산업부문에서 나오며, 전력 사용 등 스코프 2(Scope 2)를 포함하면 56%까지 차지한다.

엑슨 모빌의 장기전략목표. 미국 에너지 기업 엑슨 모빌(Exxon Mobil)은 TCFD가 개발한 프레임워크의 핵심 요소를 기반으로 한 기후 솔루션을 바탕으로 기후 관련 위험 및 기회가 조직의 사업, 전략 및 재무 계획에 미치는 실제적이고 잠재적인 영향을 공개하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Exxon Mobil 2023 Advancing Climate Solutions Progress Report
엑슨 모빌

그중 석유화학 업종은 국가 총배출량에서 8.5%의 비율을 차지해 철강(17.2%)에 이어 두번째다. 2019년 4640만tCO₂eq에서 2020년 4690만tCO₂eq로 증가하며 3년 연속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에는 나프타 분해 공정(NCC) 증설 등으로 배출량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

이때문에 석유화학 산업은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주요 산업이며, 기후변화로 생산공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높은 산업으로 꼽힌다. 석유화학 업종은 크게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으로 구분되는데 업스트림은 석유화학 공정의 첫 단계인 나프타 분해를 통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생산하는 영역이다. 다운스트림은 업스트림으로부터 원재료를 받아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등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부분이다.

탄소배출 관점에서 보면 석유화학 기업들은 자체 발전소를 보유한 경우가 많으며 스코프 1(Scope 1) 비율 즉, 직접 배출이 높은 편이다. 여기에 기후변화는 생산비용을 높게 하여 산출량을 감소시키고, 산출량 감소는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가격 인상은 다시 소비자 후생 감소로 이어지는 등 업계의 지속가능성을 낮춘다.

'2023 석유화학 산업기후위기 이슈리포트'에 따르면 석유화학 산업은 친환경 저탄소 기술로의 전환 등의 전환 리스크와 기후변화에 따른 생산과 물류 인프라 전반에 걸친 악영향을 받는 물리적 리스크에 처해 있다. 동시에 저탄소 제품 개발 등 탄소중립에 따른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모색의 과제를 풀어가야 한다.

GS칼텍스의 저탄소 신사업 확대. 이미지 출처: 2022 GS칼텍스 지속가능성보고서
GS칼텍스

이에 석유화학 기업은 단기적, 중장기적 접근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탄소중립의 단기적 방안으로 설비효율 향상, 촉매 등을 활용한 공정개선, 바이오 플라스틱 R&D 등 활성화를, 중장기 방안으로 수소, 탄소, 바이오납사 등으로의 원료 대체, 신재생에너지 등 연료 대체 및 폐플라스틱 재활용 방안 등이다. 이들 접근 방식은 생산 설비를 개선, 확장하면서 혁신적 온실가스 감축이 핵심이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을 대표하는 GS칼텍스는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 활동, CSR위원회를 ESG 위원회로 확대 개편하여 기후변화 대응 관련 이슈 관리하는 등 전사 조직 체계 구축, 기후변화 대응 연계 친환경 신사업 확대로 대응하고 있다.

LG화학은 C-Level(Chief Sustainability Office, CSO)이 참여하는 경영 회의를 통해 지속가능성 관련 논의 및 의사결정 진행, 2℃ 이하의 시나리오를 포함해 다양한 기후변화와 관련된 시나리오 분석으로 위험과 기회 요인 도출, 세부 생산시설 단위까지 월별로 탄소 배출량 집계 등 기후변화 대응 프로세스 구축(스코프 1과 스코프 2 포함) 등으로 전개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기후변화 리스크 분석을 바탕으로  자원 효율성을 추구하고 저탄소 에너지원 사용 확대, 친환경 포트폴리오 전환으로 신규 시장 확보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에너지·화학 사업 Net Zero Roadmap 경제성 평가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최소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감축 옵션을 먼저 실행하고 경제성 확보가 어려운 옵션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용 절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LG화학 넷제로를 위한 노력. 이미지 출처: 2022 LG화학 지속가능경영보고서
LG화학

그러나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은 여전히 탄소 배출량이 높은 전통적인 공정에 의존하고 있고 과학적인 탄소중립 대응이 취약해 앞으로 글로벌 시장의 규제 장벽을 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 배출 저감 기술 개발 ▲수소·바이오 기반 원료 전환 ▲전력 공급 다변화 ▲친환경 플라스틱 개발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활용하는 ‘케미컬 리사이클링’ 기술 도입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들은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 다시 원료로 사용하는 기술을 상용화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바이오매스 기반 플라스틱 개발에 투자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강업종의 수소환원제철기술과 같은 탄소중립을 위한 지배적 기술이 석유화학 산업에는 부재한 만큼 다방면의 단계적 투자 전략, 무탄소에너지·CCUS·순환경제 등과 연계한 융합적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또 정부부처와 산업 간 협력적 관계 모델도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산업계 전반의 실질적인 감축 전략으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보다 강력한 인센티브와 일관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 2023년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개최한 '석유화학산업 미래전략 토론회'에 참석한 박은덕 아주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석유화학산업 탄소중립 기술혁신을 위해 산업부·과기부·환경부 등 범부처 간의 긴밀한 협업체제가 확립돼야 하고, 기업 역시 협업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 기후변화 최대 위협요인은 '용수부족'

국내 석유화학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된 전 과정 단계별 리스크 영향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영향 리스크는 ‘가뭄으로 인한 용수공급 제한으로 생산설비의 가동정지 또는 제한적 사용’과 ‘가뭄으로 인한 용수 부족으로 대체 급수원 사용’으로 나타났다.

용수공급을 위한 기술 및 용수 수급 활용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국내 지자체별로 2014년부터 도입된 하수도 재이용 사업, 싱가포르 정부에서 2013년 시행한 하수 재처리 시스템, 대구시의 도수관로 연결 사업(2023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222억원 예산이 투입된 해상 이동형 해수 담수화 플랜트도 주목받고 있다.

기업의 경우 현대자동차는 2021년경 추진한 공장 내 폐수 재활용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그간 폐수처리장에 보내던 방류수를 3공장 내 도장 부스에서 세정식 집진기 순환수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 중이다. 당시 현대차는 연간 5만 2천톤의 용수를 재활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충남 아산공장과 인도공장에서는 이미 용수를 100% 재활용하면서 폐수를 전혀 방류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브라질 생산 법인은 생산공정 단계에서 필요한 세척수를 재활용하는 방식을 도입했고, 미국 생산 법인은 폐수 오염물질 저감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