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제거 기술(CDR) 포트폴리오 마련해야
다양한 탄소 제거(Carbon Dioxide Removal, CDR) 기술을 통합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CDR은 대기 중 CO₂를 추출하여 영구 저장하는 활동으로, 잔여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하는 보완적 역할을 한다.
최근 EU가 발간한 '카본 네거티브 핸드북(Carbon Negative Handbook, 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오차(Biochar), 바이오매스 탄소 포집 및 저장(BioCCS), 직접 공기 탄소 포집 및 저장(DACCS) 등 여러 기술이 각각의 특성과 한계점을 가지며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만 실질적인 탄소 중립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바이오차(Biochar)
바이오차는 식물성 바이오매스(예: 나무 조각, 농업 폐기물 등)를 저온에서 산소 공급 없이 가열하는 '열분해' 과정으로 만들어진 탄소 기반 물질이다. 이 과정을 통해 대기 중의 탄소가 고체 형태로 변환되어 토양에 혼합하여 저장될 수 있다.
토양의 질 향상과 수분 유지에 기여하며, 탄소가 오랜 기간 토양에 저장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저장 기간과 분해 속도는 토양 환경에 따라 다르다.
바이오매스 탄소 포집 및 저장(BioCCS)
바이오매스를 연료로 사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지하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식물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성장하므로, 연소 후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지하에 영구적으로 저장하면 '네거티브' 탄소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에너지 생산과 탄소 제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기술로, 기술 성숙도가 높은 편이지만, 바이오매스 공급과 지속 가능한 자원 관리는 과제로 남아 있다.
직접 공기 탄소 포집 및 저장(DACCS)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해 이를 압축하여 지하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고도의 기술과 에너지가 필요하며,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안정적인 지하 저장소에 보관한다.
높은 이산화탄소 제거 효율을 자랑하지만, 대규모 에너지가 필요하여 비용이 많이 들고, 에너지 공급원이 탄소중립적이어야 실질적인 기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강화 풍화작용(Enhanced Weathering)
특정 광물을 대기 중에 노출시켜 자연적으로 이산화탄소와 반응하게 함으로써 탄산염 형태로 저장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석회석이나 올리빈과 같은 광물을 사용하여 이산화탄소를 광물 속에 고정한다. 자연적인 탄소 저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저장이 가능하다.
다만, 광물을 확보하고 분말 형태로 만들어 대규모로 뿌리는 과정에서 비용과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다.
조림 및 재조림(Reforestation & Afforestation)
새로운 나무를 심거나 기존의 숲을 복구하여 나무가 성장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조림은 나무가 없는 지역에 나무를 심는 것을, 재조림은 훼손된 숲을 복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적 비용이 낮고, 생태계 복원과 생물 다양성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산불, 벌목,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인해 저장된 탄소가 재방출될 위험이 존재한다.
토양 탄소 격리(Soil Carbon Sequestration)
토양에 유기물을 추가하거나 농업 관리 방식을 개선하여 토양 내 탄소 저장을 증대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토양의 생물학적 활동이 활발해지며, 탄소가 토양 내에 격리된다.
토양 건강 개선, 물 보유력 향상 등 여러 이점을 제공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탄소가 다시 대기로 방출될 수 있어 지속적인 유지가 필요하다.
탄소 제거 인증 프레임워크 도입할 때다
이렇게 여러 기술은 준비도, 자원 의존성, 부작용 및 이익이 다르므로 포트폴리오 기반의 접근이 핵심이다. 고유한 장점을 극대화하고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통합적 실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BioCCS와 DACCS는 에너지 집약적이어서 산업 현장에 적합한 반면, 조림 및 토양 탄소 격리는 농업 및 산림 관리와 연계될 수 있다.
한국도 산업, 농업, 산림 등 여러 분야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각 기술의 역할을 평가하고, 다양한 부문에 맞는 포트폴리오 구축에 나서야 한다. 지속적인 정책 지원이 관건이다. 고비용의 BioCCS 및 DACCS 기술에는 연구개발(R&D) 지원과 세제 혜택이 필요하고, 조림과 같은 자연 기반 기술은 토지 관리 정책과 연계하는 일들이다.
즉 탄소 중립 목표에 따른 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게 적합한 지원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R&D 투자 및 세금 감면, 인프라 구축과 같은 일관성 있는 지원책과 기술 상용화 및 효과적인 배출 감축을 위한 정책 프레임이 대표적이다.
특히 탄소 제거 성과를 정확히 입증하기 위한 모니터링, 보고, 검증(MRV) 체계 도입이 중요하다. EU가 추진 중인 '탄소 제거 인증 프레임워크'의 경우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제도적 기반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탄소 배출권을 활용하려면 탄소 제거 활동의 신뢰성 입증이 필요하다. 국제 기준에 맞춘 MRV 체계 개발과 함께, 탄소 저장에 대한 리스크 관리와 책임 제도 강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BioCCS와 DACCS 같은 기술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만큼 신재생 에너지 확대와 병행하지 않으면 오히려 탄소 중립 효과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과 탄소 제거를 통합한 정책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충이 탄소 제거의 실질적 효과를 담보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춰야 한다.
탄소 제거 기준, 목표 등 명확한 정의가 관건
다만 과도한 탄소 제거 기술 의존은 자칫 전반적인 탄소 감축 흐름을 약화시킬 수 있는 만큼 감축과 제거 목표를 구분해 설정해야 한다. 보고서는 ▲영구적 탄소 제거 정의 수립 ▲탄소 감축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 추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구체적 목표 설정 ▲투명한 모니터링 및 검증 체계 구축 ▲탄소 제거의 공공재화와 사회적 참여 보장 등의 정책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예를 들면 대기에서 CO₂를 직접 추출, 영구 저장하고 해당 활동으로 발생하는 모든 GHG 배출을 상쇄해야 하는 등 탄소 제거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이는 배출량 감소, 영구적 제거, 토지 기반 격리 등 각각의 활동을 구분, 별도의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과 연결된다. 모니터링의 경우 모든 CDR 활동에 대해 철저한 회계와 검증, 이중 계산 방지 및 책임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고서는 순 제거량을 체계적으로 추정할 수 있도록 시스템 배출 경계를 적절히 설정할 것을 주문한다. 화석 연료 사용이나 토지 사용 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직접 및 간접 배출을 모두 포함하여 대기 중 추출 및 포집(요람) 이전의 모든 업스트림 배출부터 저장(무덤) 등 다운스트림까지 탄소 흐름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방식이다. 가치 사슬을 따르고, 탄소 누출 요소까지도 고려하는 이른바 '수명 주기 시스템(LCA)'이다.
뿐만 아니라 탄소 제거 기술은 사회적 지지를 위한 사회적 인식 제고와 공공 부문과의 협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보고서는 "탄소 제거의 사회적, 경제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며, 기업과 공공 부문 간 파트너십을 강화해 기술 실증과 상용화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역사회와의 협력은 자연 기반 탄소 제거 전략의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는 배경으로 봤다.
한국 역시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다양한 탄소 제거 기술을 효과적으로 통합하고 장기적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시점이다. 에너지 전환과 탄소 제거의 통합적 전략, 그리고 신뢰성 있는 검증 체계와 사회적 인식 제고 같은 지속가능한 탄소 중립 실현의 과제들을 풀어가기 위한 체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 기술의 역할을 평가하여 자원을 배분하는 전략 수립,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황에 맞는 지원과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한편 이 보고서는 EU의 연구 프로젝트 'NEGEM(Negative Emissions in Climate Resilient Pathways)'의 일환으로 작성됐다. NEGEM 프로젝트는 기후 중립 달성을 위해 현실적인 탄소 제거 기술과 경로를 평가하며, 환경적,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을 통합적으로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