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vs 진보’ 넘어야 에너지 전환 이룬다
거대한 사회 전환은 당연히 커다란 갈등과 정치적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미국 공화당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후변화 자체를 믿지 않았고, 대통령 취임 이후 파리기후변화 협약을 탈퇴했다. 이후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협약에 재가입했지만, 가장 큰 탄소 배출국 중 하나인 미국 정치권에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한 상황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국내 정치권은 전반적으로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나, 대응 방법과 속도에 있어서는 커다란 차이와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갈등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공감했으나, 국가 경제의 지속 성장,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대안으로서 원자력에 대한 인식은 매우 달랐다.
따라서 정권에 따라 원자력 산업은 큰 부침을 겪었고, 가장 민감한 정치적 문제가 되어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는 최근에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도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탄소배출량이 국가 간 패권 규정하는 시대
탄소중립을 둘러싼 사회 전환은 어떤 한 나라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없으며, 전세계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인류의 과제이다. UN 역시 빈곤탈출을 핵심 목표로 삼았던 새천년목표(MDG)를 2015년부터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로 전환했다. UN은 궁극적 목표로서 지속가능발전을 표방하고, 기후변화의 완화와 적응을 위한 구체적 노력으로 전 세계 196개국이 참여하는 파리협정을 2015년에 체결했다.
파리협약은 협약 당사국 모두의 참여와 행동을 강조하면서 국가별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재난위험을 저감하고 국가별 대응을 강조하는 센다이프레임워크(Sendai Framework)도 마련됐다. 즉 지속가능발전 – 기후변화 - 재난위험 저감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이를 체계적으로 구현한 것이,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 기후변화협약, 그리고 재난위험저감을 위한 센다이프레임워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협정은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실제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노력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대부분 약간의 자원 재분배를 통해 무늬만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저항과 점진적 조정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 작가로서 전세계적 기후위기와 제국주의 착취 구조를 탐구한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는 국가 간 권력 격차가 지금까지 각국의 탄소배출량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세계의 강대국들은 모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국가이며, 실제로 2017년 G2로 일컬어지는 중국(27%)과 미국(15%)의 탄소배출량은 전세계 배출량의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탄소배출이 곧 국력인 상황에서 각국의 자발적 탄소 감축은 결국 자국의 국력 약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강대국들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의 국제 정치 개념에서 봐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이 엄청나게 배출한 탄소를 기반으로 세계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 국가가 동일한 부담을 지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축과 수렴’ 전략-선진국은 과감하게 탄소배출을 ‘감축’해 나가고, 개발도상국들은 약간의 배출 상승을 허가함으로써 양편이 같은 목표 지점에 장기간에 걸쳐 ‘수렴’하자는 전략-등으로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 정당 간 에너지 정책 엇갈려
그러나 탄소배출량이 국가들의 패권을 결정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이러한 국가간 협약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탄소중립과 정치적 양극화’의 주제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게 다가온다. 탄소중립은 현재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목표로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탄소중립을 향한 에너지 정책은 중립적이고 이해관계자들의 공동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정책이 이해관계자들 간 정치적 입장과 견해 차이로 인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 역시 현실이다. 사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정치적 양극화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정치적 양극화는 주요 선진국인 유럽 연합, 영국, 호주, 캐나다, 미국 등에서 주로 발생하며, 이는 보수적인 정당과 진보적인 정당 간에 에너지 공급과 환경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이들 국가 내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에너지 정책을 다르게 보고 있음을 반영한다. 보수 정당은 석유 및 천연가스 산업을 선호하며, 에너지 가격의 안정성과 공급의 신뢰성을 중요시한다. 저렴하고 신속한 에너지 공급을 우선시하며, 이것이 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본다.
반면, 진보 정당들은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크며, 지속가능한 에너지 발전과 에너지 전환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 산업의 확대와 국내 에너지 생산의 증가를 선호하며, 환경보호와 에너지원의 지속성을 우선시한다.
한국은 이러한 국가들과 유사한 경향을 보이면서도 일부 차이가 있다. 개인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양극화가 되는 대상이 다르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을 위해 생산비용이 낮고, 지속적인 자원 확보가 가능한 원자력을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왔다.
유권자도 지지 정당별 인식 차 벌어져
원자력은 경제성장을 위한 주요 에너지원으로 고려되었다. 이로 인해,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간의 양극화보다는 ‘친원전 vs. 탈원전’, ‘친원전 vs. 재생에너지’ 간 양극화 문제로 부각됐다. 특히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에너지 선호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정치적 성향에 따라 에너지 선호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연구 사례로 2017년과 2021년에 실시한 설문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보수 성향을 가진 ‘국민의 힘’과 진보 성향을 가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원자력, 태양광, 석유에 대한 선호도를 비교한 결과(그림)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진행되는 동안 두 정당 지지자들 사이의 에너지원별 선호도 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양극화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태양광 선호도 차이가 0.21에서 0.72로 크게 늘어난 부분이다. 이러한 결과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원자력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은 재생에너지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성격을 띄었던 신재생에너지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진행되면서 정치적 성격을 가진 에너지원으로 변화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기에는 특히 원자력과 태양광에 대한 선호도 차이가 보수적인 정치 성향과 진보적인 정치 성향 사이에서 더욱 심화됐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는 문재인 정부 초반에는 차이가 크지 않았다가 임기 말에는 상당한 격차로 벌어졌다.
이는 재생에너지가 초기에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에너지로 인식되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치적으로 양극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효과적인 시민 참여형 에너지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 참여의 성과와 역할을 체계적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에너지 전환을 방해하는 정치적 교착상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을 구현하기 위하여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