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을 바탕으로 지역 내 재생에너지, 연료전지, 집단에너지 등 다양한 분산에너지원을 활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해당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소비하는 시스템을 실현하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분산특구)’가 닻을 올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1일 분산에너지특화지역 실무위원회를 개최해 11개 지자체 신청한 분산특구 중 7개를 최종 후보지로 선정, 에너지 전환 가속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번에 후보지로 선정된 7개 지자체는 경기도, 부산광역시, 울산시, 경상북도, 전라남도, 충청남도, 제주도 등이다. 분산특구는 수요유치형(울산·전남·충남), 공급유치형(경기도), 신산업 활성화형(부산·포항·제주) 등 세 가지 유형으로 크게 구분된다.

공급유치형은 수도권 등 계통 포화 지역에 분산 발전설비를 구축해 송전 부담을 분산한다. 또 수요유치형은 전력 수급 여유 지역에 전력 다소비 산업을 유치해 지역 내 소비를 늘리는 모델이다. 신산업형의 경우 ESS, V2G, 섹터커플링 등 신기술과 연계한 신사업 실증을 근간으로 한다.
먼저 경기도 의왕시는 ESS를 활용해 인근 전기차 충전소에 전력을 직접 공급한다. 경부하기에 저렴한 전력을 충전했다가 최대부하기에 전기를 공급, 요금을 절감하고 수도권의 계통 혼잡도 완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산광역시는 전국 1위 전력 자립 지역으로 에코델타시티에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또 국내 최초로 ESS 팜(최대 500MWh)을 조성해 에코델타시티의 데이터센터와 부산항만 선박에 전력을 공급한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전력만 ESS 충전을 통해 직접거래가 가능했지만 한전 전력도 충전해 거래할 수 있도록 신산업을 추진한다.
울산시는 지역 발전사가 전력 직접거래를 통해 울산 미포산단 입주 석유화학 업계에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할 계획이다. 연료비 연동제, 탄소배출권 연계 전기요금 등 다양한 요금제를 도입한다. 특히 글로벌 AI 데이터센터를 유치, 데이터센터 비수도권 이전을 촉진한다는 구상이다.

경북 포항시는 영일만 산업단지 이차전지 기업들에게 암모니아 기반 수소엔진 발전설비로 생산한 무탄소 전력 공급을 실증한다. 충남의 경우 대산 석유화학 단지에 있는 지역 발전사가 전력 직접거래를 통해 석화업계, 인근 산단 기업들에게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한다.
송전 제약과 태양광 출력제어로 대표적인 계통 포화지역이던 전남은 해남 솔라시도의 대규모 태양광 단지에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지역 내 에너지 생산과 소비 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구역전기사업이 최초로 도입되고 RE100 데이터센터 단지도 시도한다.
제주도는 전기차를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충·방전해 전력시장에 참여하는 V2G(Vehicle to Grid) 사업을 실증한다. 계통한계가격(SMP)이 낮을 때 전기차를 충전하고, 높을 때 방전해 계통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분산특구는 에너지 신사업을 전개할 수 있고, 지역 내 전력 생산과 소비를 촉진해 전력 여유 지역으로 수요를 이전할 수 있도록 전기요금을 할인받는다. 특히 분산특구의 발전사는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을 공급하는 등 전력 직접거래로 전력 판매시장에 진입함으로써 한국전력이 독점해온 전력시장에 경쟁자로 등장한다.

그간 수도권 중심의 전력 공급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전력망을 비롯 고압 송전 체계의 비효율성이 노출되고 환경 문제, 주민 수용성 이슈도 계속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전력 공급 안정화, 수요의 지역 편중 같은 전력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과 소비를 지역 단위로 묶는 '분산에너지'에 주목해왔다. 에너지 분권 시대의 전기를 여는 것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 탄소중립 기여에 따른 기업 경쟁력 확대 등의 산업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전국에 단일한 전기요금제가 적용됐지만, 전력 수요자가 상대적으로 송배전 이용요금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전력시장 공급자와 수요자의 행동 변화로 자연스럽게 전력시장제도 자체의 혁신이 예고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계통 연계 방안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고, 지역 사업자의 역량에도 의문 부호가 있는 만큼 일정한 시행착오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분산 발전설비와 신기술 등 에너지 부문의 기술 이슈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적극적 정책지원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6월중 에너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7개 분산특구를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