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리스크 9.5배 과소평가”...세계 최대 국부펀드의 정조준
“기후 리스크 9.5배 과소평가”...세계 최대 국부펀드의 정조준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글로벌 공급망 붕괴, 에너지·식량·기후 위기의 복합화, 이주-분쟁-고용 붕괴 등 사회적 여파에 방점을 두고 있다. 기업의 기후 정책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투자배제, 재편성, 자산 내 조정 등 실질 투자 행동과 직결시키는 점을 부각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Financials
편집자
편집자
Financials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 이하 GPFG)를 운용하는 노르게스은행이 최근 발표한 '2024 기후 및 자연 관련 정보공개 보고서(Climate and Nature Disclosures 2024)'가 전 세계 기후금융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GPFG는 총 1.5조 유로(약 2,170조 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며, 세계 9,000개 이상의 상장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다.

EU의 옴니버스(Omnibus) 기준에 대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장기투자자 중 하나인 노르게스은행의 자본이 옴니버스를 무력화시켰다”는 평가하고 있다.

보고서의 핵심은 기존 기후위험평가 모델인 MSCI의 CVaR(Climate Value at Risk) 모델이 심각한 한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기존 모델 뒤엎은 숫자...손실 19% vs 2%

MSCI가 하향식(bottom-up) 접근을 기반으로 개별 기업 리스크를 계산한 반면, 노르게스은행은 자산군 전체에 상향식(top-down) 접근을 적용했다. 그 결과 3°C 온난화 시나리오에서 미국 주식 보유 포트폴리오가 입을 수 있는 손실은 평균 19%(95번째 백분위수 기준은 27%)로 파악했다. 이는 MSCI 모델이 제시한 2% 손실과 비교해 9.5배 높은 수치다.

보고서는 “물리적 기후 리스크에 대한 기존 시장의 접근은 심각하게 과소평가되어 있는데, 기술 발전으로 인해 탈탄소 전환 비용이 예상보다 낮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GPFG는 곧 자사의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탄소 집약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과학 기반 감축 목표를 세운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재편하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GPFG는 지난해 전 세계 519개 기업과 기후 및 자연 관련 이슈로 직접 협의했으며, 1,891MW 규모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동시에 고탄소 배출 기업 10곳을 대상으로 투자 철회(이 중 8곳은 이후 리스크 개선으로 복귀) 조치를 단행했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고서는 기업들에게 요청하는 사항을 몇 가지 제시했다.

2024년 기업과의 자연(생태계) 관련 주제별 협의 횟수.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이슈가 가장 많았고, 물 관리-생물 다양성-삼림 벌채-해양 지속가능성 분야가 뒤를 이었다.

이사회 차원의 지속가능성 책임 부여

첫째, 이사회 차원의 지속가능성 책임 부여다. 펀드의 투자 리스크 전반을 감독하는 노르게스은행 집행이사회(Executive Board)는 책임 있는 투자관리 원칙(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 Management)을 제정했으며, 기후위험은 펀드의 핵심적인 투자 리스크로 간주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펀드 전체의 기후 및 자연 리스크를 관리하는 '리스크 및 투자위원회(Risk and Investment Committee)'를 운영한다.

이사회의 원칙은 UN의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 및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을 따른다. 특히 이사회는 기업들이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탄소중립(Net Zero) 목표와 전환계획을 수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향후 이사회는 펀드의 ‘2025 기후 행동 계획(Climate Action Plan)’을 승인하고, 투자기업에 기대하는 기후 목표 및 자연 보전 기대사항 문서를 최종 확정한다. 투자기업의 탄소배출이 특정 기준을 초과할 경우, 이사회 재량으로 투자 제외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한다.

이렇게 이사회는 기후 및 자연 리스크에 대한 전사적 전략을 수립하고, 내부 위원회와 외부 윤리위원회의 권고를 바탕으로 투자 배제, 감시, 회복 전략까지 직접 관장하는 구조여야 한다. 이는 단순 CSR 차원이 아니라 기후리스크를 ‘재무 리스크’로 명확히 인식한 본질적인 전환을 수렴한 것이다.

둘째, 신뢰할 수 있는 국제기준에 따라 측정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계획을 가리키는 '기후 및 자연과 관련한 과학 기반 목표 설정(science-based targets)'다. ‘과학 기반 목표’는 파리협정의 1.5°C 시나리오에 부합하면서 정량적 목표, 중간 마일스톤, 실행 예산과 검증 절차가 수반된 계획으로 재무 리스크를 줄이는 실질적인 경영 계획을 말한다.

과학 기반 목표: 선언 아닌 실행 전략

먼저 2050년까지 넷 제로(Net Zero) 달성 목표 설정이 핵심이다. 고배출 기업(high emitters)은 긴급히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2040년까지는 전체 포트폴리오 기업이 대상이다.

과학 기반 검증 기준의 경우 목표는 SBTi(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 등 공인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스코프 1, 2, 3 등 공급망과 사용단계까지 포괄하며 2030년 등 중간 시점의 감축량 목표(Interim targets) 제시가 필요하다.

현재 GPFG의 전체 탄소금융노출(financed emissions) 가운데 74%가 이러한 과학 기반 목표를 가진 기업에 의해 발생한다. 이는 2023년 대비 6%p 증가한 것이고 2021년 대비 기준으로는 31%p 늘어난 수치다.

이와 함께 생물다양성과 물 등 자연 분야에 대한 정량적 목표 설정 요구도 포함한다. 기업은 정량적 생물다양성 영향 지표, 생태계 의존도 평가(물, 토지, 생태계 서비스), 위험 지역(Key Biodiversity Areas)과의 상호작용 분석, SBTN(Science Based Targets for Nature) 같은 표준에 기반한 장기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무산림(deforestation-free) 공급망 구현을 위해서다.

또 정량적 평가 및 스코어링 도입(Climate & Nature Expectation Score)도 주목해야 한다. GPFG는 약 5,000개 기업에 대해 AI 기반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여, 목표 수립 여부, 공개된 감축 경로의 신뢰성, 재정 배분 및 실행 계획, 보고 수준 등을 정량화(100점 만점) 하고 있다. 2024년 기준 기업들의 평균 점수는 기후(56), 물관리(49), 생물다양성(33) 수준이다.

생태계 서비스에 대한 부문별 의존도. GPFG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부문인 기술 부문은 수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소비재는 가장 광범위한 생태계 서비스와 엮여 있다. 이러한 자산이 훼손되거나 손실되면 해당 부문의 기업에게 재정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데이터 출처: ENCORE 및 GPFG 계산. 
GPFG

UNGP·OECD 기준에 따른 인권 실사

셋째, UNGP 및 OECD 기준에 부합하는 인권 실사 체계(Human Rights Due Diligence) 도입이다. GPFG는 단순히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과 공동체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장기 수익률과 리스크 관리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자연 보호는 인권 보호와 분리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기준이 되는 국제 프레임워크는 UNGP의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다국적기업을 위한 OECD 가이드라인(OECD Guidelines for Multinational Enterprises)으로 기업이 인권 침해를 예방, 완화, 해결하는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며, 노르게스는 이를 GPFG의 책임투자 기준으로 공식 채택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주요 요구사항으로는 먼저 인권 리스크를 식별, 평가, 완화,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등 인권 실사(due diligence) 절차 수립 및 실행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공급망을 포함해 사업 전반에 걸친 인권 영향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기업은 지역 공동체, 소농, NGO, 원주민 등과의 협력을 통해 실제 인권 리스크를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이해관계자 참여에서 자유롭고 사전적이며 정보에 기반한 동의(Free, Prior and Informed Consent)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인권 리스크 및 실사 결과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피해자와 지역사회가 접근할 수 있는 불만 제기 및 구제 절차(grievance mechanisms) 등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이 이를 충족하지 않으면 리스크 모니터링, 관여(engagement), 투자 철회(divestment) 등의 조치를 시행하여 실제로 인권 관련 리스크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윤리위원회(Council on Ethics)의 권고를 바탕으로 투자 배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지난해 GPFG는 기후 로비 활동, 이행 계획, 해양 데이터, 산림 파괴 등과 관련한 다양한 인권 및 환경 이슈에 대해 직접 대화, 공개 서한, 컨설팅, 세미나 등을 통해 시민사회 및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단순 공시 넘어 투자 전략과 직결해야

넷째, 적용하는 주요 공시 프레임워크는 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등으로 이에 부합하는 투명하고 미래지향적 보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ESRS는 EU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의 구체적 기준으로 재무 및 사회·환경 영향 중심 보고를 요구한다. GRI는 지속가능성 보고의 글로벌 표준으로 광범위한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기업의 환경·사회 영향을 중심으로 공시할 것을 주문한다. 또 TCFD는 기후 관련 재무 리스크를 공시하도록 하는 국제적 기준으로 거버넌스, 전략,리스크관리, 지표 및 목표 등이 중심이다.

이같은 프레임워크는 기후 및 자연 리스크를 자본시장에서 실질적으로 가격화하고 반영하는 기반 구축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 투자자와 규제당국, 기업들이 참고할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준점이 되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담고 있다.

먼저 GPFG는 ESRS, GRI, TCFD 각각의 요구사항을 통합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3°C 온난화 시 미국 주식 손실 19% 등 물리적·전환 리스크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 결과나 스코프 3를 포함한 탄소배출 전체 범위 공개 및 추적 데이터, 생태계 서비스 붕괴 시 GDP 2% 감소 모델링 같은 자연자본 손실 및 생물다양성 영향에 대한 정량적 분석 같은 미래지향적 보고도 관건이다.

GPFG는 기업과 펀드의 다른 자산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및 자연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상호 보완적인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사용한다.
GPFG

EU 공시체계, 투자자에 잘못된 신호 줄 수 있다

노르게스은행은 현재 AI 기반 ‘기후 기대 점수(Expectation Score)’로 5,000개 이상 기업을 정량 평가하여 기업의 목표 신뢰성을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 PCAF 기준에 따라 1~5등급으로 구분도는 탄소배출 데이터 품질을 평가하며, 자체 개발한 내부 검증 시스템을 통해 보고 데이터의 정합성 판단을 하고 있다. 보고서 일부는 외부 감사를 통해 보증(externally assured)한다.

이 모든 것은 형식적인 공시 수준을 넘어 기업의 기후 및 자연 대응 역량을 비교·감시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여 투자자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EU 기반 공시 모델은 기후 리스크의 총체적·시스템적 영향을 과소평가하여, 투자자에게 오히려 잘못된 안전신호를 줄 수 있고, 전환 리스크(정책 변화, 탄소세 등)에 집중하고 있어 물리적 리스크(폭염, 홍수, 해수면 상승 등)를 누락한다. 또 개별 리스크의 단편적 합산에 그쳐 실제 경제 충격을 유발하는 연쇄효과(tipping points)나 비선형 손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단점이 있다.

반면 GPFG는 글로벌 공급망 붕괴, 에너지·식량·기후 위기의 복합화, 이주-분쟁-고용 붕괴 등 사회적 여파에 방점을 둔다. 보고서는 기후와 자연 리스크는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이미 우리가 투자한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문제 인식을 반영했다. 유럽연합(EU) 중심의 지속가능성 보고 규범의 대척점에서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무엇보다 이번 보고서는 기업의 기후 정책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투자배제, 재편성, 자산 내 조정 등 실질 투자 행동과 직결시키는 점을 부각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와 기업도 단기적 규제 대응을 넘어 장기적 투자 유치와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해 지속가능성과 리스크 관리 체계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신이 놓친 글
‘K-석유화학’ 생존 위기 직면…중국發 공급 과잉에 구조재편 시급
‘K-석유화학’ 생존 위기 직면…중국發 공급 과잉에 구조재편 시급
by 
편집자
2025.5.28
"녹색 전환 이끄는 핀테크…한국형 정책 기반 마련 절실"
"녹색 전환 이끄는 핀테크…한국형 정책 기반 마련 절실"
by 
편집자
2025.4.30
스코프3까지 공개 의무화…아시아 금융규제당국, ISSB 도입 확산
스코프3까지 공개 의무화…아시아 금융규제당국, ISSB 도입 확산
by 
편집자
2025.4.29
공기 중 수분으로 플라스틱 재활용 길 열다
공기 중 수분으로 플라스틱 재활용 길 열다
by 
편집자
2025.3.23
당신이 놓친 글
‘K-석유화학’ 생존 위기 직면…중국發 공급 과잉에 구조재편 시급
by 
편집자
2025.5.28
‘K-석유화학’ 생존 위기 직면…중국發 공급 과잉에 구조재편 시급
"녹색 전환 이끄는 핀테크…한국형 정책 기반 마련 절실"
by 
편집자
2025.4.30
"녹색 전환 이끄는 핀테크…한국형 정책 기반 마련 절실"
스코프3까지 공개 의무화…아시아 금융규제당국, ISSB 도입 확산
by 
편집자
2025.4.29
스코프3까지 공개 의무화…아시아 금융규제당국, ISSB 도입 확산
공기 중 수분으로 플라스틱 재활용 길 열다
by 
편집자
2025.3.23
공기 중 수분으로 플라스틱 재활용 길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