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을 추동한 영국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 랫클리프온소어(Ratcliffe-on-Soar)가 가동을 멈췄다. 기후, 에너지 등을 다루는 영국의 카본브리프(www.carbonbrief.org) 등에 따르면, 영국 노팅엄셔 소재 이 발전소는 지난달 30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이 발전소는 설비용량이 2000㎿(메가와트)로 매일 홍차 10억 잔을 끓일 수 있는 전력을 200만 가구에 공급해 왔다. 해체 작업은 10월부터 2년간 이뤄질 예정으로 170명 직원 중 120여 명이 해체 작업에 참여한다. 이 발전소는 가장 융성할 때 직원이 3천 명에 달했지만, 석탄발전이 축소되면서 인력이 줄었다.
가디언은 일자리를 잃게 될 석탄발전 노동자들이 “다른 발전소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얻거나 에너지 산업의 다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교육을 받고 있다”며 유니퍼가 노조와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향후 다른 나라 석탄발전소 폐쇄 등에도 영향을 주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번 폐쇄를 놓고 영국 정부가 탄소 배출량을 줄여 국제적으로 기후 리더십을 가지는 한편 석탄 산업 종사자들에게 정의로운 전환을 (영국 정부가) 보장한 것은 큰 성과라고 평했다.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캠페이너 토니 보스워스는 “가능한 한 빨리 영국의 거대한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개발해야 한다”며 “녹색 전환은 노동자를 보호하고 지역사회에 혜택을 줌으로써 공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힘 합친 영국 정부의 '정의로운 전환' 빛났다
영국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세계 최대 석탄 생산국으로 한때 전 세계 석탄 생산량의 85%를 차지할 만큼 산업화 과정에서 석탄발전의 비중이 매우 컸다. 카본브리프 집계에 따르면, 영국의 석탄발전소는 그동안 46억 톤 석탄을 연소하고 104억 톤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이는 대부분 국가에서 생산된 모든 석탄보다 많은 양이었다.
영국의 석탄 발전은 1990년 영국 전체 전력 공급량의 80%를 차지했지만 2015년 30%에 이어 지난해 1%까지 줄었다. 또 지난해 영국의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를 통한 전력 생산량(104TWh)도 앞선 해보다 22% 감소한 수치로 66년 만에 가장 낮았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탈석탄’ 첫 사례로 영국 정부가 2030년까지 발전 부문 탈탄소화, 2050년까지 탄소중립(넷제로)을 달성한다는 목표에 따른 것이다. 영국은 석탄발전소의 가동 시간을 줄이려 더욱 엄격한 환경 규정을 시행하면서 2025년을 석탄발전 종료일로 정한 최초의 국가다.
이번 폐쇄는 석탄발전이 기후위기 주요인이자 재생에너지 부상에 따른 영국 정부의 탈탄소·넷제로 목표에 기반해 이뤄졌다. 지난 2015년 영국은 향후 10년간 석탄발전소의 단계적 폐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영국 정부는 이를 위해 약 3년 동안 시민들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을 수정·보완해 나갔다. 그러나 전기 에너지 의존도가 커지고 폭염 등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있어 목표 달성까지 낙관하기는 이르다.
G7은 앞서가는데 한국은 여전히 답보 상태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IEA)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석탄의 전 세계 소비량은 43억 766만 톤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1% 늘어난 수치로 지난해 연간 소비량이 전년보다 2.6% 증가해 역대 최대치였는데 올해도 증가세가 이어졌다. IEA는 “주요 국가들의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 차원에서 석탄 소비량은 당분간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4월 G7은 늦어도 2035년까지 석탄발전을 퇴출하기로 합의했다. 영국이 스타트를 끊었고, 이탈리아는 사르데냐섬을 제외하고 2025년, 프랑스는 2027년, 캐나다 2030년, 독일은 2038년, 미국 2039년 등으로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미지수다. 먼저 전력 생산에서 석탄 비중이 27%에 달하는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 비중을 급격하게 줄여서 쉽사리 석탄발전소 폐쇄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석탄발전 폐지를 검토한 바 없다. 정부가 올 5월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는 2030년 석탄과 LNG를 합한 화석연료 비중이 42.5%에 달한다. 석탄발전 비중 목표치도 2030년 17.4%, 2038년 10.3%로 앞선 나라들의 탈석탄 목표에 크게 못 미친다.
2017년 출범한 국제 환경단체 ‘탈석탄동맹(Powering Past Coal Alliance)’에 한국 정부는 미가입 상태다. 2022년 합의된 탈석탄동맹 선언문에는 OECD 국가들과 EU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폐쇄하고 다른 나라들은 늦어도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이 동맹에는 국가뿐 아니라 50개 도시, 70개 기관도 참여한 상태로 서울, 인천, 대구, 제주도,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도, 전라남도 등 한국의 지방자치단치는 가입하고 있다.
탈석탄법 제정 목소리...일자리 전환 대책 시급
지난 8월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법 헌법 불합치 판결 이후 탈석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시민단체 등이 결합한 탈석탄법제정을위한시민사회연대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 폐쇄 등의 내용을 담은 정의로운 탈석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석탄발전소를 2040년까지 폐쇄한다는 방향의 탈석탄법 발의를 준비 중이나 시민단체들은 폐쇄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자리를 잃게 되는 발전산업 노동자 등에 대한 대책 논의도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이 가운데 전국의 석탄발전소 중 절반이 있는 충남 지역에서는 지난달 발전 3사 노동조합과 함께 ‘에너지전환 협의회’를 출범했다. 이 협의회는 합리적인 전력산업 정책 수립 유도를 비롯해 공공 가치 실현과 사회적 연대 실현, 정의로운 전환 연구용역 및 공론화, 신·재생에너지 공공성 강화 등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