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체 10곳 중 4곳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자가발전이나 전력 도매시장 직접구매 등 새로운 전력 조달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0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기요금과 전력시스템에 대한 기업 의견 조사’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해 기존 한국전력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전력 조달을 고려하는 기업이 39.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 중 11.7%는 즉각적인 도입 의사가 있다고 밝혔으며, 27.7%는 추가 인상이 있을 경우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응답했다.

전기요금 인상은 기업들의 투자 계획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영업 이익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10곳 중 8곳(78.7%)에 달했으며, 이 중 46.4%는 경영 활동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절반 이상(53%)은 국내 투자 계획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가격경쟁이 심해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원가상승분을 판매 가격에 전가하기 쉽지 않은 업계의 사정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이 조사에 참여한 한 석유화학기업은 “중국 저가 공세에 판매가격을 올릴 수 없다”며 “공정특성상 24시간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전기사용량을 줄일 수 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한 철강기업은 “작년 4분기 요금 인상으로 영업이익의 80%에 달하는 금액만큼 전기요금을 더 내게 된다”면서 “전기요금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정도로 매우 크다”고 말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보다 높은 수준으로 역전된 점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2000년 이후 2024년 12월까지 주택용 요금이 42% 상승한 반면, 산업용 요금은 227%나 인상됐다. 특히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 추가 인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이 더욱 가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AI 시대, 분산전원 시스템 필요성 대두
전력시장 개편과 관련해서는 ‘현재 체제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55.3%)로 기존 체제 유지를 선호하는 의견(44.7%)을 앞질렀다. 전력망 투자 부담을 완화하고, 저비용 에너지원 확대를 통한 전기요금 부담 경감을 요구하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나 추가 전기요금 인상이 있을 경우 대비책이 있냐는 질문에는 응답 기업의 74%가 ‘없다’고 답했다. 대응책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26%)도 주로 ‘에너지 절약 및 설비 교체’(55.1%), ‘고효율 설비 투자’(50%) 등의 방법 정도를 고려하고 있었다.
AI 발전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등의 전력 소비 증가에 따라 전력을 지역 내에서 직접 생산해 사용하는 ‘분산전원 시스템’ 도입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응답 기업의 74.3%는 분산전원 시스템 도입에 찬성했으며, 지역 내 전력 직접 거래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공급 안정성’(49.3%)을 꼽았다.
전기요금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 대안으로는 ‘저비용 에너지원 확대’(71.0%)가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으며, ‘에너지 효율 설비에 대한 자금 지원 및 세액 공제 확대’(51.7%), ‘요금제 다양화’(43.3%) 등이 뒤를 이었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 원장은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하는 국가로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효율적인 전력시장 조성이 필수적”이라며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전력 시스템 혁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2025년 2월 17일부터 21일까지 전국 제조업체 300곳(대기업 51개, 중견·중소기업 249개)을 대상으로 전화 및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