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을 삼킨 초대형 산불과 더 심화되는 이상 기온 현상 등 한반도가 기후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00년간 평균기온은 1.8도나 상승했다. 이는 세계 평균(1.1도)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한국의 기후 위기는 현실의 문제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제21대 대통령 선거는 기후 및 에너지 정책 이슈의 실종으로 아쉬움을 사고 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를 둘러싸고 사실과 거리가 먼 중국 논란까지 불거져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 정부의 기후, 에너지 대응은 이념 싸움의 영역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존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 독일,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은 이미 헌법이나 유사한 법적 장치로 기후 책임을 명시하는 등 국가 최상위 법령에 국가 책무를 명시하는 상황이다. 또 지난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기후변화로부터 미래 세대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기후 전문 NGO ‘기후솔루션’은 차기 정부가 반드시 추진해야 할 10가지 정책 방향을 담은 ‘기후 해법’에서 헌법에 기후위기 대응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환경 정책의 수준을 넘어 국가 운영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독립적 에너지 거버넌스와 기후경제 컨트롤타워 설치 등 탄탄한 제도적 뒷받침으로 이어져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후솔루션은 정부의 실제 대응 목표도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는 국제사회의 평가 기준에서 '불충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보다 훨씬 더 과감한 60% 감축 목표를 2035년까지 설정하고, 메탄 등 비이산화탄소 온실가스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요청되는 대목이다. 아울러 배출권 거래제도 전면 개편해 산업 전반에 실질적인 감축 유인 제공도 필요하다.
차기 정부는 탈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 등 산업 정책을 기후 중심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기반의 반도체 국가산단 구축, 녹색 철강 수요 확대, 전기추진 선박 및 해운항로 개발 등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글로벌 탈탄소 규제 흐름을 감안하면, 지금의 산업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렵다. 그 핵심에는 ‘탈석탄’이 있다. 한국의 석탄발전은 여전히 전체 전력의 30%를 차지하며,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석탄발전을 LNG로 전환하는 기존 방식이 오히려 탄소 배출을 지속시키고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한다"며,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ESS) 기반으로 전환해야 35조 원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35년 석탄발전소 전면 퇴출을 위한 3대 패키지(재생에너지 전환·송전망 개편·LNG 억제)와 독립 송변전사업자 설립을 통해 전력망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현재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OECD 최하위권에 그치고 있는 것은 불합리한 규제 정책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태양광 발전의 이격거리 제한, 해상풍력의 복잡한 인허가 절차, 고도제한 등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특히 차기 정부는 기후대응기금의 기능과 규모를 대폭 강화하고 전략적 R&D 지원으로 미래 기후 기술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에 나서야 한다. 수소환원제철, e-메탄올 생산 같은 기술은 향후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분야지만 대규모 정부 지원과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 유럽 등에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위해 금융 부문도 개선이 요청된다. 국민연금은 세계 3대 연기금이지만, 여전히 석탄 투자 비중이 크고, 기후위험 반영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기후솔루션은 "석탄 투자 제한 기준 강화, 기후변화에 취약한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 금융 배출량 측정과 관리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연금의 ‘기후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적금융 역시 탈탄소 전환이 시급하다.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은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공적금융기관이 청정에너지 중심의 투자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탄소중립의 실행 의지나 정책 일관성이 근본부터 흔들린다.
기후 솔루션은 에너지 전환을 통한 지역균형 발전 모델도 제시했다. 탈석탄 지역을 재생에너지 산업지구로 전환하고, 스마트농업과 지역 기반 탄소중립 기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ICT 기반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K-옥토퍼스’를 육성하는 등의 전략을 제시했다.
산림 보호와 복원, 저탄소 식단 확산, 생태계 보전 등 통합적인 정책 마련도 필요하다. 자연자원총량제 도입, 바이오매스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 대체육 산업 활성화 등의 의제를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후위기는 곧 생태위기이자 식량위기, 즉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