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시스템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으나, 한국 전력시장은 여전히 화석연료 중심의 낡은 구조에 묶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솔루션이 최근 발간한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시스템으로의 전환-가스발전소에서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 VPP)'에 따르면 "차세대 전력 시장의 핵심은 가상발전소"라면서 “현행 화력발전소 보상에 치중된 도매시장 제도를 개편하지 않으면 전환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VPP는 태양광·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반응자원(DR) 등 분산형 자원을 통합·운영해 도매시장에 참여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은 이미 30GW 규모의 VPP를 운영 중이며, 2030년까지 80~160GW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를 통해 전체 전력 피크의 20%까지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 여전히 LNG 발전 확대에 ‘집중’
전문가들은 "VPP는 전력 수요 피크 대응뿐 아니라 짧은 구축기간과 높은 경제성 덕분에 기존 가스발전을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400MW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VPP가 43$/kW로, 가스발전(99$/kW) 대비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대규모 LNG 발전소 건설에 정책적·재정적 무게를 두고 있다. 제10차·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국내 가스발전소 설비용량은 2023년 43.2GW에서 2038년 69.2GW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분산형 전력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지연시킬 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확대에도 걸림돌이 된다.
보고서는 제주도의 사례를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18%를 넘었지만 LNG 복합발전소가 ‘머스트런(Must-Run)’으로 지정돼 낮은 수요에도 일정량을 강제 가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는 출력제어를 받는 상황이며 앞으로 신규 LNG발전소(300MW)까지 추진돼 출력제어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현행 전력시장은 ‘변동비 반영 시장(Cost Based Pool)’ 구조로 설계돼 연료비가 없는 VPP, ESS, DR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용량요금 제도는 가스발전을 기준으로 설계돼 재생에너지 및 ESS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화석연료에 맞춰진 보상제도…유럽의 1/10에 불과
무탄소 전원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보상제도에 탄소비용이 충분히 반영돼야 하는데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은 톤당 1만원 미만으로, 유럽의 1/10 수준에 불과하다.
보조서비스 시장도 문제다. 제주에서 시범적으로 개설됐으나, VPP 자원은 여전히 참여가 제한돼 있다. 육지 계통 역시 보조서비스 제도가 존재하지만 수요가 많아질수록 단가가 낮아지는 역설적인 구조 탓에, 유연성 자원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는 ▲석탄→LNG 전환 정책 전면 취소 ▲용량요금 및 보조서비스 제도 개선 ▲전기차·DR 자원 통합 허용 ▲양방향 충전기·AMI(지능형 계량기) 인프라 확충 ▲독립적 배전망운영자(DSO) 구축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VPP를 중심으로 한 제도 개혁과 인프라 투자가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