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 4기 개편…탄소회계 시대 본격화
배출권거래제 4기 개편…탄소회계 시대 본격화
정부가 공개한 '제4차 계획기간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안)'은 산업계 전반의 ‘탈탄소 회계질서’를 다시 짜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기업에 주어진 선택지는 단순하다. “선제적 감축으로 기회를 잡을 것인가, 단기적 회피로 미래 비용을 떠안을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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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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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개한 '제4차 계획기간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안)'은 산업계 전반의 ‘탈탄소 회계질서’를 다시 짜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한국 배출권거래제(ETS)는 2015년 출범 이후 “탄소 가격을 통한 효율적 감축”을 목표로 삼아왔다. 그러나 2021~2025년 제3차 계획기간은 공급 과잉과 저조한 가격으로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2025년까지 최대 1억 4천만 톤의 잉여 배출권이 누적될 전망이다. 이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이행 시 ETS 허용총량의 최대 30%를 잠식할 수 있는 수준이다.

3, 4기 탄소누출업종 판단기준 변화 및 유·무상할당 업종. 출처: 환경부 '제4제4차 계획기간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안) 및 제3차 계획기간 국가배출권 할당계획 변경(안) 공청회 주요내용'

1억4천만 톤 잉여 전망…감축 유인 상실했다

배출권 가격은 톤당 6달러 선에서 머물러 EU(81달러), 미국 캘리포니아(26달러), 중국(10달러)에 비해 ‘초저가’ 수준이다.

산업계는 탈탄소 전환 대신 단기적 회피 전략에 안주했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배출권거래제가 감축 유인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환경부는 2026~2030년을 아우르는 제4차 계획기간에서 ‘시장 정상화’와 ‘투자 촉진’을 양대 목표로 내세웠다.

첫째, 시장안정화 예비분이 신설된다. 이는 경기 변동에 따라 공급 과잉 혹은 부족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예비분을 투입하거나 회수하는 방식으로 가격 급등락을 완충하는 장치다. 사실상 한국 ETS에 처음 도입되는 ‘자동 안정화 메커니즘’으로, 3기에서 드러난 제도적 허점을 보완한다는 평가다.

해법은 시장안정화·유상할당 확대·BM 강화

둘째, 유상할당 확대가 추진된다. 발전 부문은 현행 25~10%에서 30~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되며, 장기적으로는 100% 유상할당도 검토된다. 산업 부문 역시 현행 10%에서 15%로 상향된다. 이는 국제 탄소시장과의 정합성을 높이는 조치로, 배출권 가격 정상화와 투자재원 확충을 동시에 겨냥한다.

셋째, BM(벤치마킹) 할당 확대다. 효율이 우수한 기업에 더 많은 배출권을 배정하는 BM 제도의 적용 비중은 62%에서 77%로 높아진다. 2030년까지 업종 내 상위 20% 효율을 기준으로 맞추는 ‘탄소 효율 경쟁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다만 정부는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 탄소누출 우려 업종에는 전량 무상할당을 유지한다. EU 등 주요국 역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다소비 업종에는 여전히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또 판단 기준은 한층 까다로워진다. 기존의 ‘비용발생도×무역집약도’ 대신 ‘탄소집약도×무역집약도’로 바뀌며, 업종별 원단위 배출 효율성이 평가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히 “수출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무상할당을 보장받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자동 안정화 장치 도입…유상 비율 단계적 상향

효율 우수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BM(벤치마킹) 할당은 3기 62%에서 4기 77%로 대폭 확대된다. 2030년까지 업종 내 상위 20% 수준으로 단계적 상향이 예고돼 있다. 사실상 ‘에너지 효율 경쟁’이 배출권 배정의 성패를 좌우하는 구조로 전환되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는 2030년 배출권 가격을 4만~6.1만 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유상할당 수입만 2.8~4.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재원은 탈탄소 설비 투자, 저탄소 R&D,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으로 환류돼 산업계의 전환을 밀어붙이는 동력으로 쓰인다.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3기 할당계획 변경(안)'도 함께 내놨다. 2016~2022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에 민간발전사 석탄소비량이 누락되면서, 발전 부문에 2,520만 톤이 과다 할당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총량은 기존 30억 6,950만 톤에서 30억 4,430만 톤으로 조정됐다.

이는 한국 배출권거래제가 ‘정확한 배출량 산정’이라는 기본 전제에서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보여준다. 시장 신뢰 회복 없이는 제도 정비도 공허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4기 BM할당 대상 업종·공정 확대방안. 출처: 환경부

BM 인센티브와 유상할당 재투자 혜택 부여

이번 4기 개편은 산업계에 분명한 시그널을 던진다. ‘탄소비용을 외면하면, 더 큰 비용을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효율 개선과 저탄소 설비 투자가 선제적으로 이뤄지는 기업은 BM 인센티브와 유상할당 재투자 혜택을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반면 단기적 비용 회피에만 머무르는 기업은 배출권 가격 상승, 무상할당 축소, 국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압박까지 중첩된 이중·삼중의 부담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배출권거래제 4기 개편은 한국 산업계에 탄소회계 시대의 본격 도래를 알린다. 이번 제도 변화는 투자 전략·수출 경쟁력·산업 구조 재편과 직결되는 경제정책이다. 결국 기업들은 '탄소비용을 줄이느냐, 떠안느냐'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배출권 가격 최대 6만 원 전망...투자냐, 회피냐

정부는 2030년 배출권 가격을 4만~6.1만 원으로 예상한다. 이에 따른 유상할당 수입은 최대 4조 원 규모로, 이 재원은 저탄소 설비 투자,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R&D 지원으로 환류될 계획이다.

그러나 기업에 주어진 선택지는 단순하다. “선제적 감축으로 기회를 잡을 것인가, 단기적 회피로 미래 비용을 떠안을 것인가”이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이 본격화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한국 ETS의 신뢰성은 곧 수출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3기의 오류 수정에서 드러났듯 통계와 회계의 정확성도 제도의 생명줄이다.

배출권거래제 4기 개편은 산업계의 투자 전략, 수출 활로, 나아가 한국 경제 구조 재편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산업별 파급효과: 기회와 압박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부문은 탄소누출 우려 업종으로 전량 무상할당을 유지한다. 그러나 판정 기준이 ‘탄소집약도×무역집약도’로 강화돼, 비효율적 생산 구조는 더 이상 면죄부를 받기 어렵다.

발전 부문은 유상할당 비중 확대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100% 유상 전환 가능성이 거론되는 만큼 석탄·LNG 발전사는 조기 연료 전환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업종은 처음으로 BM 대상에 포함된다. 고효율 공정을 조기에 도입하는 기업은 배출권 배정에서 우위를 차지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을 떠안을 수 있다.

부동산, 도소매, 통신, 건설 등 서비스업은 유상할당 대상에 포함된다. 지금까지 배출권 규제와 거리가 멀었던 업종에도 ‘탄소 비용’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는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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