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는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대폭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 개정을 담은 개정안을 행정예고(제2024-1026호)했다.(편집자 주: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은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과 그 하위 법령에 근거한 국토교통부 고시다.)
개정안에 따르면 연면적 1천㎡ 이상 민간 건축물은 에너지 절감 효과가 큰 설계를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해당 면적의 건축물을 신축·재축·전부 개축·증축하는 경우, 비용 대비 에너지 절감 효과가 높은 설계 항목(냉방부하 저감 등 8개 항목)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또 같은 규모의 건축물에는 냉난방·급탕·조명 설비에는 일정 비율 이상의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꼭 포함해야 한다.

연면적 1천㎡ 이상 건축물, 고효율 설계 의무화
건축물 에너지 소비 총량 기준도 강화됐다. 기존 단위면적당 연간 200kWh/㎡ 이하였던 기준을 150kWh/㎡ 이하로 낮췄다. 공공기관 건축물은 더 엄격한 130kWh/㎡ 이하 기준이 적용된다. 이는 사실상 제로에너지건축물 5등급 수준에 근접한 기준으로, 민간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8월 13일부터 9월 1일까지 20일간 행정예고를 거쳐 연말부터 시행된다. 내년부터는 개정 기준이 건축 허가 신청 및 건축위원회 심의 대상 건축물에 적용된다.
공공 건축물 중심의 규제가 민간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민간 건축물 역시 탄소중립 달성의 전략적 자산으로 편입된다. 이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가피한 전환이다.
국토부는 설계기준 강화로 건설비용이 약 2~3%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비용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으로 사회적 편익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단기적 부담은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순편익 구조를 지닌 정책이라는 의미다.
EU·미국·일본 등 의무화...한국은 일단 유연한 접근
국토부는 민간 건축주의 부담을 고려해 ▲설계 기준(의무사항) ▲성능 기준(소비 총량) 중 하나를 충족하면 되도록 설계했다. 규제 강도를 유지하면서도 업계의 자율적 선택을 허용한 유연한 접근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 개정안은 국제적 흐름과도 닿아 있다. EU는 2010년 건물 에너지 성능 지침(EPBD)에 따라 2021년부터 신축 건물은 모두 ‘거의 제로에너지건물(nZEB)’을 충족토록 했다. 에너지 효율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강력히 요구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0년부터 신축 주거용 건물에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했다. 이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화 정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일본은 2030년까지 신축 건물의 절반 이상을 ZEB로 전환하는 목표를 세웠으며, ‘ZEB Ready’ 인증 제도를 통해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건축 설계, 건설비용, 부동산 가치, ESG 평가 영향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이번 개정은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EU처럼 전면적 ZEB 의무화까지는 아니지만, 민간 건축물에 대한 첫 제도적 압박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국토부는 지난 2021년 수립한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의무화 로드맵에 따라 민간 건축물 에너지 성능 향상을 필수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민간 건축물의 의무 적용 범위를 확대할 예정인데 이번 개정은 그 로드맵의 중간 단계로, 향후 더 강화된 기준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건축 및 설계 시장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일단 건축가와 엔지니어는 에너지 성능을 고려한 설계 기법을 필수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패시브 디자인(단열, 일사 조절, 자연환기 등) 요소가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건설비용 및 투자 구조도 증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운영비 절감, 건물 가치 상승, ESG 평가 개선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 빌딩 연계, BEMS·ESS 등 ICT 융합 산업 확장
태양광, 지열, 연료전지, ESS(에너지저장장치), BEMS(빌딩 에너지 관리 시스템) 등 연관 산업이 직접적인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적으로는 ‘그린빌딩 인증(LEED, BREEAM 등)’을 받은 건축물이 임대료 프리미엄과 투자 선호도 상승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개정 기준을 충족한 건물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스마트 빌딩 솔루션과 연계될 경우, 기술·서비스 시장 확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
2025년 12월 31일 이후 허가 신청 건부터 적용되므로, 건축주는 사전 검토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준 충족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또 신재생에너지 설비, 에너지 성능 분석 등 전문 컨설팅을 통해 효율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부, 전문 컨설팅·보조금·R&D 지원 등 뒷받침 필요
정부도 업계와 건축주의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한 정부 보조금·세제 혜택 확대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기술 인프라 강화를 위한 R&D 지원도 관건이다. 시장 수용성 제고를 위한 인식 개선과 제도 홍보도 적극 살펴야 한다.
이번 개정은 한국 건축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한다. 공공에서 민간으로, 권고에서 의무로 옮겨가는 과정은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다.
단기적으로는 업계의 비용 부담과 혼란이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에너지 자립 사회 구현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을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은 8월 발간한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 개정: 민간건축물에 대한 탄소중립 확대' 보고서에서 “민간 건축물의 설계 기준 강화가 규제 피로감을 키울 수 있지만, 건축주가 의무사항 또는 성능기준 중 하나를 충족하면 되도록 설계해 유연성을 확보했다”며 “향후 추가적인 법령·제도 개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