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계약전력 300kW 이상 기준)은 2022년 kWh당 105.5원에서 2024년 185.5원으로 무려 75.8% 상승했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이 주택용·일반용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전력다소비 업종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1일 국제 에너지 산업 환경의 변화와 국내 에너지 산업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정책적 시사점을 모색한 '환경과 산업을 함께 살리는 新에너지전략이 필요하다' VIP 리포트에서 "국내 제조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며,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 1월 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 112곳의 평균 전기요금이 2022년 481.5억 원에서 2024년 656.7억 원으로 36.4% 증가했으며, 매출 대비 전기요금 비중도 7.5%에서 10.7%로 높아졌다.

전력망 병목·ESS 부족…계통연계 지연과 출력제한 빈발
현대제철은 내 전력 사용량이 2020년 54,683TJ에서 2023년 54,066TJ로 소폭 감소했지만, 전력비 및 연료비는 같은 기간 2조 894억 원에서 2조 6,232억 원으로 25.5%나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은 가격·기술·인프라 면에서 주요국 대비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 설치비용은 kW당 1,205달러로, 중국(약 670달러) 대비 1.8배에 달하며, 미국·독일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간접비용 비중도 한국은 24.1%로, 미국(15.7%), 독일(16.7%), 중국(19.9%)보다 현저히 높아 원가 절감 여지도 작다.
잠재력이 높은 풍력 발전 현황도 녹록치 않다. 한국의 누적 설치용량은 2024년 기준 약 2.3GW로, 중국(521.7GW), 미국(153.2GW), 독일(72.8GW) 등 주요국과 큰 격차를 보인다. 풍력 기술 수준도 최고기술국 대비 76%에 불과하며,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도 30~40%로 낮은 편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전력망 인프라도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 발전 입지가 전라남도, 제주도 등 비수도권에 집중된 반면 수요는 수도권에 몰려 있어, 2024년 기준 광주·전남 지역은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23.5%를 차지하지만 전력 수요는 7.9%에 불과하다.
천연가스 시장, ‘망 중립성’ 미비로 민간 참여 제한
에너지 저장장치(ESS)의 부족, 스마트그리드 체계의 미비, 실시간 출력 대응 한계 등도 재생에너지 계통 연계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ESS 보급은 증가 추세이나, 2017~2019년 발생한 화재사고 이후 제도 보완이 지연되면서 시장 확장에 제약이 따르고 있다.
천연가스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전환 연료로 주목받고 있으나, 한국의 시장 구조는 여전히 공기업 중심의 독점 체제다. 2024년 기준 국내 LNG 수입량(4,633만 톤) 중 민간 직수입 비중은 26.4%에 그친다.
특히 한국가스공사가 수입과 배관망 운영을 동시에 겸업하고 있어 제3자 접근권(TPA)이 보장되지 않으며, 도매시장도 존재하지 않아 시장 가격 형성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규 민간 사업자의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이다.
보고서는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 간 균형을 고려한 한국형 에너지전환 전략 수립을 위한 4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전기요금 안정화와 계통 유연성 인프라 선투자다. 보조금 재설계 및 기후대응기금의 타겟화 사용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 폭을 최소화하고, ESS·양수발전 등 인프라 확충에 선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전환-산업경쟁력 동시에 고려한 전략 시급"
또 재생에너지 가격경쟁력 확보도 시급하다. 원가 절감뿐 아니라 인허가·금융·계통비용 등 간접비 절감 정책과 함께, RE100 산업단지 조성으로 근접 생산·소비체계 도입을 주문했다.
천연가스 시장 개방 및 통합 거버넌스 도입도 필요하다. 배관망 중립성 확보와 함께 전기·가스·열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에너지 통합 거버넌스’ 체계 마련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전력시장 구조개혁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도매시장 도입, 수요반응시장 활성화, 탄소가격 신호 강화 등을 통해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구조 개편이 관건이다. 보고서는 "국제 기후규범 강화와 제조업 리쇼어링 경쟁 속에서, 한국도 산업·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실용적 에너지정책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 수출 중심의 첨단 제조업체들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규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시장 접근 제한, 비용 상승 등의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 과정 탄소배출량 관리 시스템 구축, 제품별 탄소발자국 관리체계 도입, RE100 참여 확대, 에너지 고효율 설비 투자 등 ESG 중심의 경영 전략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