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참여해 2053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로 조성될 ‘반도체 전초기지’다. 정부는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총 16GW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러나 클러스터 가동의 핵심 변수인 ‘전력 공급’ 문제는 여전히 수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1일 공개한 '이슈와 논점-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리스크 진단'에 따르면,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 계획은 안정성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다수의 위험 요인을 안고 있으며, 이는 곧 국가 전략산업 전체의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6GW 전력 수요, 공급 가능할까 의문 커져
반도체 생산은 전력 품질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순간적인 정전이나 주파수 불안정은 곧바로 수율 하락과 막대한 손실로 직결된다. 보고서는 팹(fab) 한 기가 단 1분간 정전에만 노출돼도 수십억 원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는 16GW, 이는 2024년 우리나라 최대 전력 부하의 16.5%에 해당한다. 그러나 자체 발전으로 충당 가능한 전력은 4.5GW에 불과하다. 나머지 11.5GW는 외부에서 끌어와야 하는데, 문제는 서울 남부 전력 수요의 60%에 달하는 21GVA를 한정된 지역(서울 면적의 1.9%)에 집중 공급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집중 공급이 물리적으로 가능한지부터 정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변전소 집중 설치와 송배전망 이중화, 지하화가 필수적이지만, 이는 수십조 원대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와 장기간의 기술 검증을 요구한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글로벌 ESG 경쟁 속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을 선언했다. 그러나 정작 용인 클러스터 내부에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할 공간이 없다. 결국 재생에너지 인증서 구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실질적 전환이 아니라 ‘명목상 달성’에 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적 비용 급증에 한전 경영난 예사롭지 않아
더 본질적인 문제는 탄소중립 목표와의 충돌이다. 클러스터 운영에 필요한 16GW라는 막대한 전력은 대한민국 전체 최대 전력 수요의 약 16.5%에 해당한다. 이마저도 대부분 LNG 등 화석연료로 충당한다면 탄소 배출은 불가피하며, 수도권 재생에너지 입지 부족 문제까지 겹쳐 탄소중립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또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 반발은 불가피한 갈등 요소다. 이미 안성시 등 송전선 경과 지역에서는 “수익은 수도권이 가져가고, 피해는 지역이 떠안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는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법을 제정했지만, 주민 수용성은 여전히 낮다.
송전선 주변 주민 보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법제화된 지원제도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전선로가 통과할 때마다 나타나는 보상 문제는 갈등을 장기화시키며, 공사 지연은 클러스터 전체 일정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한국전력공사의 경영난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한전은 2025년 2분기 기준으로 206조 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차입금만 86조 원에 달하며, 2028년까지 상환해야 할 원화사채는 49조 원 규모다. 그런데도 한전은 2038년까지 용인 클러스터를 포함한 전력망 확충에 73조 원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

DSO·VPP 도입, 갈등 비용 가격화 등 개선 과제
해상풍력 등 고비용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특수목적법인(SPC) 형태로 투자하면서 단기 수익성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전이 과연 안정적으로 전력망 확충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해상풍력 등 고비용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특수목적법인(SPC) 형태로 투자하면서 단기 수익성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첫째, 전력 품질 유지를 위한 배전망 전문 관리기관(DSO)을 두는 한편 ESS·연료전지·가스터빈을 통합해 가상발전소(VPP) 운영을 제시했다.
둘째,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인증서 제도 개발, 지방 생산 재생에너지와의 직접거래(PPA) 활성화 등 재생에너지 시장 제도 개편을 주문했다.
셋째, 송전선 과세, 지역별 차등요금 등으로 갈등 비용을 전력 요금에 반영 등 갈등 비용의 가격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글로벌 고객사 신뢰 확보, ESG 이행이 관건
넷째, 주요 접속선로 이중화, N-2 기준 충족, 자가설비 투자에 대한 세제 감면 등 인센티브 제공으로 전력망 신뢰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송전선 연금제도’와 같은 해외 사례를 도입해 주민 보상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보장할 필요성이 강조된다.
현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은 ‘공급 가능한가’라는 물리적 가능성보다 ‘어떻게든 맞추겠다’는 낙관적 전망에 기댄 측면이 큰 상황이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성과 탄소중립 이행 여부를 까다롭게 평가하고 있어, 용인 클러스터가 전력망을 둘러싼 문제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막대한 투자 유치와 해외 고객사와의 장기 파트너십 구축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클러스터’라는 수식어는 자칫 거대한 리스크의 상징으로 남을 수도 있는 셈이다. 정부와 기업은 전력 공급 계획의 정교한 설계와 함께 지역사회 수용성과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